그러나 이러한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직전 분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감소했다. SK하이닉스와 비교하면 실적 개선 폭이 크지 않았으며 HBM 공급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시장 점유율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을 단순한 회복세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DS부문 영업이익은 15조1000억원에 그친 반면 SK하이닉스는 약 23조5000억원의 연간 영업이익을 올렸다. SK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이익은 메모리 초호황기였던 2018년(20조8437억원)의 성과를 넘어선 수준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이익이 SK하이닉스보다 낮은 경우는 두 회사가 나란히 적자를 기록한 2023년을 제외하고 처음이다.
양사의 희비를 가른 건 HBM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오며 시장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반면 범용 메모리가 주력인데다 아직 엔비디아 공급망에 합류하지 못한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유의미한 실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발열 문제와 신뢰성 부족이다. HBM 제품은 고성능 AI 및 서버 환경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높은 열이 발생하는데 삼성전자의 HBM 제품은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 대비 발열 관리 성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GPU에 최적화된 HBM3E 제품군에서 삼성전자는 열 방출과 전력 효율성 문제로 인해 엔비디아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전자의 HBM 제품 수율이 낮고 일관된 성능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은 단순한 메모리가 아니라 고도로 복잡한 패키징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인데 삼성전자는 아직 ‘실리콘 관통 전극(TSV)’ 적층 기술과 열 관리 기술에서 경쟁사 대비 부족한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가 이미 엔비디아와의 공급 계약을 대부분 완료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고객사를 다변화하지 못하면 시장 점유율 확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에서 사상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특히 HBM 공급망에서 엔비디아와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GPU 'B100'에 HBM3E를 공급할 가능성이 커지며 향후 HBM 시장 점유율을 60%까지 확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AI 인프라 기업들과도 공급 계약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생산분의 계약은 이미 완료됐으며, 10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경쟁력을 되찾으려면 HBM4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인 35조원의 연구 개발비를 투입하는 등 HBM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오는 2분기부터 실적이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적 개선의 핵심 변수로는 HBM3E 12단 제품의 엔비디아 공급 및 파운드리 대형 고객 확보 여부가 꼽힌다. 올 2분기 안에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면 올해 HBM 공급량을 전년 대비 2배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1월 31일 진행된 4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올해도 업계 전반의 AI향 투자가 지속되면서 모바일·PC 고객사의 재고조정 속도가 예상 대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메모리 수요는 2분기부터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단기간 내에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HBM3 및 HBM3E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이미 고객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반등을 노릴 시점은 HBM4 출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가 이르면 올해 6월 엔비디아에 HBM4 샘플을 출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삼성전자가 자체 패키징 기술 개선, 인텔과의 협력 확대 등을 통한 차별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부문은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SK하이닉스와의 기술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지속적인 실적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AI 기능을 활용한 차별화 전략과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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