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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말년의 정치, 욕심의 끝에서 국가를 본다

양규현 사장 2026-01-23 14:05:14
양규현 이코노믹데일리 사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내란죄로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장면이다. 개인의 비극이자 동시에 공직과 권력의 말년에 대한 뼈아픈 경고다. 한때 그는 관가에서 “부러운 관료”로 불렸다. 총리를 두 차례 지냈고 장관과 부총리를 두루 거쳤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생존과 적응에 능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능력과 경륜 그리고 운까지 갖춘 듯 보였던 인생이었다.

그러나 권력의 마지막 계단은 언제나 가장 미끄럽다. 노자는 “공을 이루고도 물러날 줄 아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했다. 한 전 총리의 궤적을 돌아보면 이 오래된 경구가 왜 지금 다시 떠오르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그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 출범 과정에서 다시 전면에 나섰고 그 선택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이어졌다.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때 멈췄어야 했다”는 말이 회자돼 왔다. 진영을 넘나들며 살아온 이력이 말년에는 오히려 족쇄가 됐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공직 생활 내내 출신 지역을 드러내지 않다가 호남 정권이 들어서자 비로소 이를 밝힌 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시대와 정권에 따라 자신을 조정해 온 삶의 방식이, 위기의 순간에는 ‘기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물론 이런 평가는 이제 모두 과거형이다. 지금 남은 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70대 후반의 노인이 2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향하는 장면은, 어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인간적으로는 안타깝다. 그러나 공직자의 책임은 연민만으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헌정 질서를 뒤흔드는 범죄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역사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카이사르는 이미 영광의 정점에 서 있었지만 더 큰 권력을 향한 욕망이 결국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조선의 권신들 역시 말년의 집착으로 가문과 이름을 함께 잃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성공한 인물의 몰락은 대개 능력 부족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데서 시작된다.

한 전 총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욕심을 조금만 덜었다면 그는 ‘유능한 관료’로 역사에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권력의 중심에 서기를 선택했고, 그 선택의 책임을 이제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개인의 비극을 넘어 이는 공직자 사회 전체가 곱씹어야 할 교훈이다.

정치는 젊을 때보다 늙을 때 더 위험하다. 판단력은 흐려지고 과거의 공적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가 쌓일수록 법과 원칙은 멀어진다. 그래서 공직자의 말년은 능력보다 절제가 더 중요하다.

이번 판결을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권력의 말미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국가와 헌법 앞에서 개인의 경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묻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덕수라는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말년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말년을 준비할 수는 있다. 내려올 줄 아는 용기, 그만둘 줄 아는 절제가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이력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권력을 다루는 사람들의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는 언제든 비슷한 비극을 반복하게 된다.

연민은 인간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원칙은 국가에 필수다. 한 전 총리의 남은 시간은 개인의 몫이지만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말년의 정치가 왜 두려운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