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달러당 1400원대를 돌파하며 외환위기 당시의 공포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그럼에도 증시는 오로지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전망치에만 기대 질주를 이어간다. 실물 경제의 침식 위에 세워진 주가 상승은 비정상을 넘어 기이한 장면에 가깝다. 기초 체력이 무너진 상태에서 숫자만 치솟는 현상은 언제든 붕괴될 수 있는 신기루다.
현재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과거의 관성으로 겨우 버티고 있을 뿐 구조적으로는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이미 0%대 진입을 예고하고 있고 저출생·고령화는 노동 공급의 기반 자체를 갉아먹고 있다. 내수 시장은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에 눌려 숨을 쉬지 못하고 자영업자들은 고금리와 고물가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줄도산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수 상승을 경제 회복의 증거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자기기만이다.
더 심각한 경고는 대외 지표에서 나온다. 1400원대 환율은 더 이상 ‘수출 기업에 유리한 고환율’이라는 교과서적 설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자산 전반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신뢰가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학개미들이 국내 시장을 떠나 달러 자산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개인 투자자의 선택을 넘어 자본 흐름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서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는데 특정 업종의 실적 착시만 보고 경제가 건강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대가는 국가 전체가 치르게 된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은 해법 가운데 하나인 ‘농지법 개정안’은 또 다른 불안을 키운다. 농촌 소멸을 막기 위해 농협 등 기관의 농지 소유를 허용하겠다는 취지는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헌법이 천명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훼손할 소지가 있으며 농지마저 자본 투기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위험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사례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프랑스는 ‘사페르(SAFER)’라는 강력한 공적 관리 기구를 통해 농지의 투기적 거래를 철저히 차단하면서도 전문 영농 법인의 참여를 유도해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기업의 농지 임차는 허용하되 소유권은 엄격히 통제함으로써 농지를 투기 자산이 아닌 생산 자산으로 관리해 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소유 규제의 완화가 아니라 자본 투입의 효율성은 수용하되 농지가 부동산 상품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세이프가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 뒤에 숨은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반도체라는 단 하나의 기둥에 의존해 버티는 한국 경제는 바람 앞의 등불과 다르지 않다. 펀더멘털 복구 없는 증시 랠리는 허망한 신기루일 뿐이며 농지와 같은 기초 자산마저 자본 논리에 무방비로 노출하는 것은 미래의 식량 안보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무너진 기초 체력을 보강하고 고환율의 파고를 막을 방파제를 쌓으며 농촌과 내수의 구조 개혁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숫자의 환상에서 깨어나 발밑의 진흙탕을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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