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부회장의 주요 계열사 지분 매입은 향후 순환출자 해소를 고려한 포석인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개편 관련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가운데 현대모비스 인적분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최근 증시 폭락으로 정의선 부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더욱 다양해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식(보통주)을 각각 3만3888주, 1만7050주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19일부터 27일까지 현대차 주식 58만1333주, 현대모비스 주식 30만3759주를 확보했다. 이번 추가 매집은 그 행보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기아차 주식은 단 1주도 매수하지 않았다. 다만 기아차가 현대모비스 주식 7320주를 추가 매집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핵심은 현대모비스라는데 이견은 없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현대모비스 인적분할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이를 중심으로 한 계획을 추진했으나 당시 현대모비스 분할 구조, 분할된 현대모비스(사업부문)와 현대글로비스 합병 비율 등 문제로 철회했다. 현대모비스 사업부문이 저평가됐다는 지적이었다.
이전부터 증권가에서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대주주로 있는 만큼 현대글로비스는 ‘매수’, 현대모비스는 ‘매도’ 의견을 암암리에 피력해왔다. 이번 정 부회장 행보로 이러한 인식은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식 지배구조 개편안을 재추진하기엔 합병비율 변경이 필요하지만 명분이 부족하다. 그러나 4000억원가량 현금을 보유한 정 부회장이 가치가 낮아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면 합병비율을 크게 조정하지 않고도 지배구조 개편이 가능하다.
현대모비스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나누고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투자부문을 정몽구 회장과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맞교환하는 방법도 있다. 2018년 분할 계획을 보면 해외 매출은 존속부문(투자부문), 내수는 신설부문(사업부문)이 각각 큰 비중을 차지했다. 기존 방안대로 현대글로비스와 사업부문을 합병하려면 상대적으로 투자부문 가치를 높일 때 주주 저항이 덜해진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사태로 국내시장 대비 해외시장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역으로 보면 정 회장 부자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기아차 보유 현대모비스 투자부문 맞교환이 수월해진 셈이다.
이 때 지배구조는 ‘총수일가→현대모비스 투자부문→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사업부문’이 된다. 현대모비스 사업부문은 상장을 통해 안정적 수익성에 기반한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56.67%를 보유하고 있어 정 부회장이 보유한 기아차 지분도 처분하는데 무리가 없다.
그룹사 대부분 주가가 하락하면서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 인적분할을 시도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인적분할 대신 이사회 결의를 통해 총수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제철 지분을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과 맞바꾸는 방법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지배력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인적분할 없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평가된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정 부회장 행보를 두고 지배구조 개편과 연관 짓기도, 관계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며 “자사주 매입 대상에서 기아차를 제외한 것은 지배구조개편 장기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한 것은 이번 증시 폭락으로 정 부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라며 “책임경영 의지를 보이면서 주주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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