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연탄 사업에서 시작해 가스로 중심축을 옮겨 안정적인 실적을 구가해 온 삼천리그룹이 신사업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창업해 30여년 만에 인수합병(M&A)을 통해 도시가스 공급업에 진출하며 재계 49위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그로부터 다시 40년이 지난 현재 가스 관련 사업 이외 이렇다 할 새로운 성장동력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삼천리그룹은 재계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지분 구조를 가졌다. 창업주 한 명에서 뻗어져 나온 가문이 기업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모습과 달리 70년 가까이 이(李)씨와 유(柳)씨 두 가문이 공동으로, 정확히 같은 비율로 지분을 소유했다. 오랜 기간 유지된 동업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각 가문이 홀로서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직은 이를 가늠할 징후는 없다.
신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배경으론 보수적인 기업 문화와 함께 두 가문의 공동 경영이 꼽힌다. 삼천리그룹은 중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어느 한쪽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뜻을 맞춰 왔다고 전해진다.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공격적인 투자와 M&A에 나서며 빠른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요즘 기업 분위기와는 분명 다르다.
◆연탄에서 가스로, 삼천리도 M&A로 컸다
삼천리그룹 매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은 단연 가스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삼천리의 연결 기준 매출은 3조1811억원으로 이 중 도시가스 공급(2조2509억원)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5878억원)이 약 89.6%다. 자동차 판매·정비와 플랜트, 호텔 등 사업도 하지만 매출 비중은 미미하다.
최근까지도 사업 구성은 큰 변화가 없다. 도시가스 공급과 발전 사업 매출 비중은 2021년 85.7%, 2022년 88.1%%로 소폭 늘었다. 도시가스를 각 가정에 공급하고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특성상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안정적인 편이다. 삼천리는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공시 대상 기업집단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여기에는 사양 산업인 연탄을 포기하고 가스로 갈아탄 게 결정적이었다. 삼천리가 도시가스 소매 공급으로 업종을 전환한 계기는 1983년 경인도시가스 인수였다. 당시 경인도시가스는 경기·인천 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던 회사로 삼천리 인수 이후 수도권 산업단지 개발, 신도시 건설과 맞물려 몸집을 빠르게 키울 수 있었다.
도시가스 진출은 M&A에 소극적인 지금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 재계에서는 삼천리의 도시가스 사업 진출을 '신의 한 수'로 평가한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대다수 가정이 연탄 보일러로 난방을 했는데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신축 주택 공급이 활발해지면서 가스·석유 보일러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강원 지역에서 문을 닫는 석탄 광산이 늘어나면서 당시 결정은 빛을 발했다.
연탄 사업은 삼천리가 도시가스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토대였다. 창업 당시만 해도 연탄을 제조·판매하는 데 머물렀지만 1970년 석탄을 채굴·생산하는 삼척탄좌를 인수하면서 원료에서 제품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에 성공했다. 이때만 해도 삼척탄좌는 삼천리보다 훨씬 규모가 커서 도전적인 M&A였다. 삼척탄좌에서 유래한 삼탄은 현재 에스티인터내셔널로 명맥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동행'서 아름다운 '결별'로? 아직 징후 없어
창업 동지인 고(故) 이장균 회장과 유성연 회장이 써내려 간 성공 스토리는 TV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극적이었다. 함경남도 출신인 이장균 회장은 한국전쟁 중에 월남해 유성연 회장을 만났다. 전쟁통에 쌓은 각별한 인연을 거름 삼아 1955년 서울 을지로에서 함께 연탄공장을 차린다.
사업은 매우 순조로웠다. 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인 경제 개발이 시작되며 황폐화된 산림을 복원하는 녹화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정부에서는 화전민을 이주시키고 벌목을 강하게 규제했다. 자연스레 연탄이 주력 에너지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폭증하는 연탄 수요에 힘입어 삼천리는 1966년 '삼천리연탄주식회사' 법인으로 전환한 지 10년 만인 1976년 유가증권 시장 상장사로 올라섰다.
혈연 관계가 없는 두 창업자가 수십년 동안 관계를 이어오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장균 회장과 유성연 회장 가문은 아직까지 별다른 잡음 없이 동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1997년, 유 회장은 1999년 각각 타계했는데 이 무렵 2세들에게 남겨진 '동업 각서'는 유명한 일화다. 각서 내용은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뜨면 남은 사람이 유가족을 돌본다는 것, 둘 중 한 명이 반대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너 2세인 이만득 회장과 유상덕 회장은 각자 집무실 금고에 각자 동업 각서를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창업 회장의 유지에 따라 지금도 삼천리 지분은 이만득 회장 가족과 유상덕 회장 가족이 5대 5 비율(각각 19.5%)로 갖고 있다. 지난 2010년 당시 삼탄이 삼천리 지분 약 36만주를 처분하면서 양가의 지분 수를 동등하게 지키기 위해 단 1주를 장내 매물로 내놓은 사례는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된다.
이장균·유성연 회장은 생전 마냥 사이 좋게 지내지만은 않았다. 두 사람은 성격이 정반대였는데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의견이 갈리면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주변에서 보기에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싸운 적도 있지만 결별을 택하지 않았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합의를 도출해 냈고 일단 뜻을 맞추면 그에 따르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업 각서에 '한 사람이 반대하는 일은 안 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동업 유지를 위한 약속이다.
최근 들어서는 3세 경영 승계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며 결국은 두 가문이 결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집안 사이에 유대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두 가문도 계열 분리를 한 다른 기업을 따라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이장균 회장의 삼천리와 유성연 회장의 삼탄(에스티) 계열이 서로 독립 경영을 하고 있다. 삼천리와 삼탄은 법인 간 지분 관계도 없다.
삼천리와 삼탄 계열이 완전히 갈라서려면 특수관계인 간 지분 관계가 해소돼야 하는데 현 시점 기준으로 이러한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악재에도 '굳건'…위기는 안정 속에 찾아온다
두 집안의 끈끈한 관계는 크고 작은 악재가 생겼을 때마다 이를 극복할 동력이 됐다. 지난 4월 말 주식시장을 덮친 소시에테제네랄(GS)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SG증권을 통해 삼천리를 포함한 8개 회사 주식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이 가운데 삼천리 주가는 2021년 마지막 장이 열린 12월 30일 9만800원으로 마감했는데 2년도 채 안 된 올해 3월 24일에는 50만원을 돌파하더니 4월 7일에는 52만4000원까지 급등했다. 같은 달 24일 SG증권에서 '매도 폭탄'이 터지며 그날 하루에만 삼천리 주가가 30% 가까이 빠졌다.
SG증권 사태가 올해 가장 규모가 큰 주가 조작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큰 것과는 별개로 삼천리 대주주의 대응이 주목을 받았다. 이만득 회장과 유상덕 회장 일가는 이 무렵 주식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천리는 지난해 하반기(7~12월) 주가가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언론 등을 통해 "주가가 오르는 이유가 불분명해 투자에 신중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SG증권에서 매도 주문이 급증하자 대주주가 주식을 급하게 처분한 기업도 적지 않았다.
급격한 주가 변동이 기업 재무 상황을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회사 신용등급도 최고 우량 등급(AA) 다음인 AA+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부채 비율이 226%로 처음 200%를 넘겼으나 한국가스공사에서 LNG를 사오는 가격이 올랐기 때문으로 우려할 일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통상 도시가스 공급업자는 LNG를 외상으로 들여 오고 이는 재무제표에서 매입채무로 잡힌다.
그러나 매출과 수익이 안정적인 사업을 하는 탓에 미래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육성에는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지난 20년간 계열사를 늘려 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도시가스 공급업 의존도가 높아 성장을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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