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의 경제전문지 블룸버그통신은 "대만의 주식 시장이 기술 라이벌인 한국의 주식 시장을 압도했다"며 "한국과 대만 주식의 시총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과 대만의 시총은 약 2년 전만 해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 5월 현재 한국(코스피)은 2151조원, 대만(가권지수)은 2846조원을 기록했다. 격차는 695조원이다.
블룸버그는 대만 증시 상승분 중 3분의2 가량을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TSMC 시총은 지난 13일 기준 1231조원으로 471조원인 삼성전자 시총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만의 한국 시총 역전 이유를 TSMC와 삼성전자 간 격차 때문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 속 대만이 한국과 다른 길을 걸어가며 경쟁력을 키워간 덕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첨단산업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과 대만 증시 간 차별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이 차별화 전략으로 꼽은 건 공급망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의 핵심 이론인 '무어의 법칙'(2년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배로 증가하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후공정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파운드리부터 패키징, 후공정 분야까지 반도체 산업 전반에 걸쳐 견고한 공급망을 갖춘 대만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된 것이다.
여기에 산업 역량을 갖춘 여러 기업들이 반도체 생태계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도 대만의 매력으로 꼽혔다. 대만 시총 상위 10개 기업 중 TSMC를 포함해 약 5개가 반도체 업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반도체 관련 모든 일을 총괄하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대만 정부의 지원 정책이 반도체 시장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서는 반도체 학과 만든다고 이것저것 하고 있지만 딱히 성공한 게 없다"며 "인재 양성이라던지 '대만판 칩스법'이라고 불리는 정책적 지원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더욱 경쟁력 있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시총은 '기업의 미래 성장'을 기대하는 수치로 평가된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저평가되는 아쉬운 상황을 극복하려면 지금이라도 한국만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삼성전자가 최근 TSMC에 맞서 '턴키' 서비스를 발표하며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 사업을 아우르는 세계 유일한 기업"이라며 "반도체의 모든 제조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보니 파운드리와 메모리, 패키지 업체를 각각 사용할 때보다 칩 개발부터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약 20% 단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도 최근 대규모 반도체 지원을 예고하면서 반도체 생태계를 대기업에서 중소 편중되지 않는 데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정부는 총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에서 중소·중견 반도체 기업에 70% 이상을 지원할 방침이다.
Copyright © 이코노믹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