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사비 인상을 둘러싸고 건설사와 조합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공사가 중단되는 현장이 있는가 하면, 공사비를 줄여 갈등을 풀어간 곳도 있다.
18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54.6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 1월 118.30과 비교하면 30.7%나 상승한 수치다. 건설공사비지수란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 노무, 장비 등 직접 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통계다.
이처럼 공사비가 급등한 것은 원자재 가격 인상 외에 고물가 영향에 따른 인건비 상승과 곱절 뛰어오른 건설자재 가격 등이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난 3년간 시멘트 가격은 54.6%나 올랐다. 이 밖에 철근(64.6%), 형강(50.4%), 아연도금강판(54.1%), 건축용금속공작물(99.5%) 등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건설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공사비 증액이 고스란히 조합원 분담금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사비 갈등은 결국 분양 지연으로 이어진다. 서울 은평구 대조 1구역은 조합과 현대건설 간 공사비 갈등이 격화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설상가상으로 조합 내홍까지 격화되고 1800억원 상당의 공사비 지급이 밀리면서 현대건설은 유치권 행사에 나섰고 재개 시점을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도 공사비 증액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11월 공사비를 기존 7947억원에서 1조4492억원으로 인상하기로 했고 조합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해당 사업지는 지난해 분양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갈등이 격화되며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추가 분담금에 대한 부담으로 시공 계약을 해지하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분담금을 추산한 결과 25평형 재건축 아파트를 받으려면 분담금이 현 실거래가와 동일한 5억원에 달한다며 계약 해지를 추진했다.
공사비 상승 해법 찾기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연초부터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공사비 상승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부동산 전문가는 “원자재 가격뿐만 아니라 최근 노무비도 급격하게 상승했고, 건설현장 노동패턴의 변화로 건설장비 조달도 어려워졌다”며 “공사비 하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에 먼저 고급 마감재 적용 및 특화 설계를 잇따라 취소해 공사비를 줄이는 조합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구역 재건축 조합은 최근 시공사와 공사비 증액 협상 조건으로 고급화 설계 포기를 선택했다.
앞서 시공사는 커튼월룩 도입과 단지 내 에스컬레이터 설치 등에 따른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다. 2020년 계약 당시 3.3㎡당 512만원이었던 공사비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설계 변경이 겹치며 898만원까지 상승했다.
조합은 공사비를 올리는 대신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선택하고 커튼월룩을 입히는 설계를 포기했다. 커튼월룩은 강철로 골조를 세우고 유리로 외벽을 세우는 공법이다. 주로 고층 빌딩과 고급 아파트 외관에 적용되는 기법이라서 고급화의 상징으로 꼽히지만, 비용이 문제다.
더불어 단지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방안도 취소했다.
다른 재건축·재개발 구역도 비슷한 사정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진주 재건축 조합은 조경과 설계 고급화로 3.3㎡당 660만원 수준이던 공사비가 900만원까지 오르자 고급 마감재 지정 취소를 두고 내홍을 겪었다.
결국, 일부 고급 마감재 포기로 새 협상안이 823만원 수준에서 제시됐다. 조합이 지정한 마감재를 두고 내부 이견이 여전해 추가 상승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도 최근 공사비 협상 과정에서 일부 고급 마감재를 포기했다. 2020년 3.3㎡당 490만원이던 공사비가 지난해 859만원까지 오르자 조합이 지정한 고급 마감재 대신 일반 마감재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한 건설사 고위 임원은 “공사비를 절대적으로 늘리기 어렵다면, 상대적인 비용을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라며 “정비사업 조합으로서는 단지 고급화에 필요한 비용에서, 시공사로서는 특화 설계에 필요한 비용에서 각각 어느 부분을 줄일지 검토해 공사비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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