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스위스 동물학자가 ‘알파 수컷’이란 용어를 사용한 후 알파는 싸움을 가장 잘 하는 힘 센 우두머리 수컷을 일컫는 말이 됐다. 이후 권력은 힘과 폭력성의 다른 말로 여겨졌다. 드 발은 "암컷의 권력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들을 수 없던 이유는 눈길을 확 끄는 수컷의 지배적 행동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뒤늦게 발견된 알파 암컷의 특징은 ‘중재’다.
암컷의 싸움은 알파 암컷이 막고, 수컷의 싸움은 알파 수컷이 막는다. 알파 암컷은 대체로 나이가 가장 많은 암컷이 맡는다. 구성원들이 연륜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알파 수컷 자리는 대체로 싸움 서열 1위 수컷이 가져 간다. 그러나 힘이 전부는 아니다.
드 발은 가장 싸움을 잘 하지만 알파로 인정받지 못한 젊은 수컷을 관찰하게 된다. 알고 보니 구성원에게 중재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 젊은 수컷은 힘은 약하지만 무리에서 연륜을 인정받은 수컷과 연대를 이뤄 알파 자리를 차지한다. 싸움이 일어나면 젊은 수컷이 힘으로 막아서도 계속 됐다. 나이 든 수컷이 나서서야 사태는 마무리 됐다.
사회적 동물이 사회를 이룬 이유는 결국 생존이다. 모여서 치고받고 터지는 일이 있더라도 모여야 산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갈등 해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회다. 갈등을 중재할 수 없는 사회 또는 무리는 와해 되고 생존은 난망해진다.
최근 조선소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를 취재하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사측과 노조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린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혼재 작업은 불법이다. 페인트칠과 용접을 동시에 하면 화재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사측은 혼재 작업은 없었다고 말하고 노조는 며칠 전에도 했다고 한다. 말과 글로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이때 나서야 할 알파는 누구인가?
원론적으로 회사와 노동자는 상하 관계다. 도시 노동자가 생겨나던 1차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회사가 그만 나오라고 하면 내일 당장 실직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회사와 노동자의 갈등이 극에 달할 무렵 정부는 헌법에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새겨 넣었다. 즉 노사 관계에서 알파는 정부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결국은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이란 물리력을 강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힘 센 젊은 알파 수컷이다. 알파 역할의 절반만 수행한 것이다. 침팬지 무리가 그렇듯이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리더십이 동반될 때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 여기서 양 측의 평행선을 멈출 수 있는 정부의 중재 방식은 특별감독이다. 현장 실태를 파악해 진실을 제시함으로써 갈등 봉합의 물길을 틀 필요가 있다. 지속되는 노사 갈등은 산업의 생존을 어렵게 할 뿐이다. 이제 중재가 나설 시간이다.
Copyright © 이코노믹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