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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기자수첩] 회사가 주는 '출산장려금'이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

성상영 기자 2024-02-22 11:31:55

기업들 "저출산 타파" 목돈 지원 경쟁

승자와 패자 문제, 현금이 낳을 후유증

"근본 원인 철저히 분석" 尹 발언 기대

사진=성상영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넷째 출산하면 3000만원', '2년 동안 차량 지원', '자녀 1인당 1억원'.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내놓은 공약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기업이 직원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내건 지원책이다. 금호석유화학이 3000만원을 띄우니 부영이 1억원으로 받았고 롯데가 그 중간쯤 가격인 기아 카니발 차량을 걸었다. 기업 이름을 지우고 보면 마치 보수파와 급진좌파, 중도파가 벌이는 표 대결 같다.

이들 제도엔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장려금 1억에 근로소득세가 40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오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급기야 정부는 "과세 기준을 증여로 잡겠다"고 했다.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4분기 0.6명대까지 떨어진 '저출산 쇼크'가 만들어낸 촌극이다.

기업의 출산 장려책이 파격으로 비춰진 이유는 목돈 또는 그만한 물건을 한 번에 줬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성 직원, 영유아 자녀를 둔 남성의 근로시간을 줄여주는 정도였다면 이만큼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대기업 남성 직원은 "어차피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는 있어도 못 쓰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현금성 지원을 마냥 반기기에는 걱정이 앞선다. 목돈을 받는 사람이야 당장 기분이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목돈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 직원은 임금근로자 열 중 하나에 불과하다. 몇 사람의 짧은 행복을 합친 총량이 사회 전체 이익보다 클 수는 없다. 복지 제공 주체가 국가가 아닌 기업일 때 생기는 단적인 문제다.

같은 대기업군 안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 쉽다. 해마다 불거지는 성과급 논란이 이를 잘 드러낸다. 작년엔 이 사업부 직원이 불만이고 올해는 저 사업부 직원이 불평을 하는 탓에 소모적 갈등이 반복된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대체 인력을 구하고 근로시간을 복잡하게 관리하느니 한 번에 목돈을 주는 게 속편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금 자체가 갖는 한계가 명백하다. 일부 지자체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한 뒤 지역 물가가 딱 그만큼 오르더라는 주민의 하소연이 있었다. 산후조리원 이용료는 신생아 바우처가 결정한다는 얘기도 있다. 세금으로 준 돈이 고스란히 산후조리원 운영 업체 몫이 됐다는 소식은 예비 엄마·아빠에게 허탈감만 안겼다. 시중에 화폐가 많아지면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단순한 원리다.

대통령까지 나서 기업 동참을 호소한 탓에 현금성 출산 장려 경쟁은 한동안 이어질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 해소에 앞장서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제일 눈에 띄니 현금을 풀어야겠고 나라에 돈은 없으니 기업 옆구리를 찌르는 건 절대 아닐 테다. "저출산 근본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겠다"는 대통령 발언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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