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바로 이 자리에 '울산 리사이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겁니다. 축구장 22개가 들어설 수 있는 규모죠. 2025년 말이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세 개의 공장이 한꺼번에 돌아갈 예정입니다."
지난 6일 SK 울산 콤플렉스(울산CLX)에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에는 터 닦기가 막 끝난 듯한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공장 굴뚝과 크레인만 아니라면 산업단지와 인접해 있다는 사실도 잊혀질 만큼 넓은 면적이었다. 울산 산업단지 끝자락에 있는 부곡용연지구 21만5000㎡, 약 6만 5000평 부지. SK이노베이션이 총 투자 비용만 1조 7000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대형 친환경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곳이다.
◆"연간 약 25만톤 재활용 가능"...3대 기술 확보
SK이노베이션 계열사인 SK지오센트릭은 지난해 '세계 최대 도시 유전 기업'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다시 석유로 만드는 친환경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울산 리사이클 클러스터는 그런 친환경 목표를 실천하려는 의지 중 하나다.
울산 리사이클 클러스터에는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해중합 △열분해 등 SK지오센트릭이 선정한 세 가지 재활용 공정 시설이 들어선다. 재활용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연간 폐플라스틱 약 25만톤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경영이 눈길을 끌면서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뛰어드는 국내외 기업은 많지만 3대 재활용 공정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순차적으로 건설을 진행하기보다 2025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계획도 눈길을 끈다.
박천석 SK지오센트릭 GT1 스쿼드(Squad) PL은 "시설이 가동되면 열을 식혀주는 쿨링 워터 공급이나 폐기물 처리 등의 공정이 필요하다"라며 "각 시설이 개별적으로 산재해 있는 것보다 PP 추출 공장 등이 한꺼번에 몰려 있으면 서로 서포트가 가능하고 후처리 공정도 상호 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에 통합 운영과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봇개부터 첨단 CCTV까지...탄소 배출 저감 시도
울산 산업단지는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지난 1962년 지정됐다. 대한민국 최초 산업단지로서 지난 60년간 최대 수출 거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해온 셈이다. SK 울산CLX도 그 시간을 함께 해왔다. 전신인 대한석유공사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이후 마련된 부지에 처음으로 정유공장을 준공하면서다.
환갑을 맞은 SK 울산CLX 내 시설에는 전반적으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유 배송 등에 활용하는 파이프는 눈에 띄게 녹이 슬어 있었다. 정유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이따금씩 배출되는 수증기가 아니었다면 실제로 운용되는 시설인지 의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지난 1972년 국내 최초로 가동한 기초유분 에틸렌을 생산하는 나프타 열분해 시설(NCC)은 노후화를 이유로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노후화된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 시설 관리는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시설에 따라 다르지만 몇 년 주기로 순차적으로 가동을 중단한 뒤 내부 장비를 교체하는 식으로 시설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설 곳곳에서 육안으로 실시간 안전 점검을 하는 베테랑 직원들과 별도로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정실을 운영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조정실은 SK 울산CLX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동시에 탄소 배출 저감을 시도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최근엔 로봇개 등을 동원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까지 감시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조정실 입장을 준비하고 있는데 관계자들이 일회용 실내화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넷제로' 목표를 세운 SK이노베이션에서 일회용 실내화라니... 오히려 탄소 배출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회사 관계자는 "조정실은 안전 점검을 위해 24시간 가동하고 있다"라며 "작은 정전기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외부인의 출입을 엄중 제한하고 있지만 (외부인이 방문할 경우) 정전기 방지용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SK 울산CLX의 탄소감축 노력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즉시 실행 가능한 공정효율 개선, 저탄소 연료 전환 등을 통해서다. 중장기적으로는 직접 탄소를 감축하는 기술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설비/운전을 최적화해 에너지효율을 높이면서 탄소배출량을 줄여 나가는 식이다.
일단 SK 울산CLX는 상압증류공정(CDU)의 열전달 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열교환장치나 배관에 쌓이는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첨가제를 주입하거나, 열전달 효율이 좋은 열교환기와 내부식성 공기예열기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에너지 효율향상 방안을 추진중이다.
탄소 포집/저장 등 실질적으로 탄소를 감축할 수 있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사업도 구체화되고 있다. CCUS는 이산화탄소 직접 제거를 통해 넷제로 달성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SK에너지는 지난 20년 간 SK 울산CLX에서 탄소를 포집해 액체 탄산용 원료로 공급 중이다. SK이노베이션도 CCS 관련 국내외 국책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수소 공장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동해가스전에 저장하는 CCS 실증모델개발 정부과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향후 국책과제로 추진될 CCS 실증사업권을 확보할 계획이다.
유재영 울산CLX 총괄은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친환경 중심의 공정개선, 연료전환 등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탄소감축과 관련된 신기술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며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에 에너지를 공급해온 역량을 바탕으로 향후 탈탄소 에너지에 기반한 친환경 소재&리사이클 리딩 플랜트로 도약하겠다”라고 말했다.
◆향후 5년간 약 5조원 투자…”친환경 투자 통해 넷제로 달성”
지난 60년간 대한민국 에너지 공급을 선도한 SK 울산 콤플렉스(이하 울산CLX)가 향후 미래에너지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체질 개선에 나섰다. 2027년까지 약 5조원을 투자해 넷제로(Net Zero) 달성을 앞당기겠다는 목표다.
SK 울산CLX는 2030년까지 탄소 50% 감축, 2050년 넷제로 달성을 파이낸셜 스토리로 정하고, 생산과정의 그린화와 생산제품의 그린화를 추진하고 있다. SK 울산CLX가 2027년까지 약 5조원을 투자하는 분야는 크게 △순환경제 구축(1.7조원) △설비 전환 및 증설을 통한 친환경제품 확대(3조원)다. 당장 에너지 공급원으로써 석유제품을 대체할 제품이 없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설비를 변경하고, 그동안 생산해온 석유화학제품을 재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유공장으로, 1964년 4월 일 3만5000배럴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국내 최초로 가동했다. 1980년 선경(SK의 전신)에 인수되면서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가 완성됐다. SK 울산CLX가 증설과 중질유분해시설(FCC) 등 고도화 설비 투자를 통해 세계 3위 규모의 정제능력을 키우는 동안 울산도 이를 기반으로 산업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 밖에 SK 울산CLX는 CCS(Carbon Capture & Storage) 사업, 넥슬렌 공장 증설 등에 투자할 예정이다. SK지오센트릭이 독자개발한 넥슬렌과 같은 고기능성 화학제품은 일반 화학제품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을 현격히 줄일 수 있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이 창립 60주년을 맞아 ‘올 타임 넷제로(All Time Net Zero)’ 비전을 선포했다. 기존 '2050 넷제로'를 뛰어넘는 지속 가능한 그린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올 타임 넷제로는 창립 100주년을 맞는 2062년까지 회사 설립 후 배출해 온 모든 탄소를 상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2019년 기준 배출량 대비 2050년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2050 넷제로’를 넘어서는 SK이노베이션의 도전적 목표이자 새로운 약속이다.
최태원 회장은 "SK이노베이션의 지난 60년에 대해 “대한민국의 산업 역사와 완벽히 일치한다”라며 "(SK이노베이션은) 탄소 문제에 있어 ‘더 좋은 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유공 시절의 빨강색과 흰색을 넘어 환경을 뜻하는 ‘그린’으로 테마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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