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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단독] 손보사 횡포에 정비업계 "살려달라"...공임비 '후려치기'

신병근, 성상영, 김현수 기자 2022-09-27 00:00:00

[보험갑질 민낯①] 역대급 실적잔치 보험사 '두 얼굴'

'쥐꼬리' 수가…영세업체 잇단 월급 체납·폐업 위기

삼성·DB·현대·KB 4사 시장장악 84%…전횡수위 심각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 소재 한 자동차 정비업체(공장)에서 차량을 수리하고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현대판 노예계약." "돈줄 쥔 갑(甲)의 횡포."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보험사 사슬에 묶인 영세 자동차 정비업계가 울부짖고 있다. '협력사'라는 가면을 쓴 손해보험사들은 우월적 지위로 동네 정비사를 옥죈다. 수리비용 단가 후려치기와 미납·지급 지연은 차고 넘친다. 불만 표시로 낙인 찍힌 업체는 소송에 휘말리기 일쑤다. 업계 갈등을 풀어야 할 정부와 관계 당국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본지는 업태 질서를 황폐화시키는 손보사 갑질 민낯을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손보사 횡포에 정비업계 "살려달라"...공임비 '후려치기'

<계속>


국내 자동차보험제도가 의무화되면서 정비 수가(酬價)를 지급하는 주체인 손보사 갑질 수위가 도를 넘고 있다. 수가로 먹고사는 영세 정비업체는 철저한 을(乙)의 위치다. 수가를 정하는 시간당 공임(工賃)은 최근 3년 사이 겨우 4.5% 올랐다. 치솟는 물가와 인건비 대비 쥐꼬리만 한 수준이다. 이조차 손보사는 합리적 근거 없이 차일피일 인상을 미루고, 연기 사유를 철저히 감추고 있다. 직원 월급조차 밀린 업체 사장들은 살길이 막막하지만 과다 청구를 빌미로 소송까지 거는 보험사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제발 살려주세요"···'수가' 늪에 빠진 乙의 절규

#1. 26일 서울 성동구 소재 한 수입차 정비업체에서 만난 대표 A씨(48)는 DB손해보험이 제기한 소송 걱정에 손부터 부르르 떨었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보와 더불어 국내 17개 손보사 중 이른바 메이저 4대 금융사로 꼽히는 DB손보와 '계란으로 바위 치기'식 법적 다툼을 앞둔 부담 때문이다.

이 업체는 지난해 12월 진행한 수입차 수리를 놓고 DB손보를 상대로 받아야 할 보험정비수가(시간당 공임x작업 시간)를 4000만원가량으로 산정했다. 이마저 기존 DB손보와 약정한 기준에 따라 1900만원을 최종 청구했지만 DB손보 측이 자체 심사 후 제시한 수가는 고작 900만원에 불과했다.

터무니없이 낮은 수가에 항의한 A씨는 오히려 DB손보 측에서 과잉 청구를 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심지어 A씨처럼 수입차를 취급하는 업체는 국산차 업체보다 높은 공임을 받아야 하는데도 동일한 공임을 적용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난에 허덕인 최근 4년간 20명이던 직원 수는 6명이나 줄었다. 여기에 DB손보와 소송전을 벌인다는 입소문이 퍼져 근근이 찾아오는 손님 발길마저 끊기고 있다.

A씨는 "DB손보 측에 관련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로, 가격 후려치기도 모자라 그마저 못 주겠다고 소송까지 건 것"이라며 "보험사는 일방적으로 계약서만 들고 와서 서명만 하라는데 DB손보가 제일 악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사는 '너(업체) 아니면 말고' 식으로 계약을 맺고 업체가 딴지를 걸면 건마다 소송을 걸어 겁박하듯 대한다"며 "온몸에 기름때 묻히며 열심히 사는 공장 사람들을 제발 살려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평당 15만원에 달하는 공장 부지 임대료가 버거운 A씨는 DB손보와 같은 보험사 강압에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며 조만간 폐업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인근에는 이미 셔터를 내리고 입간판만 덩그러니 달린 업체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2. 서울 강서구에서 정비업으로 18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B씨(54)는 현대해상 측 일방적 수가 통보와 꼼수에 진저리를 쳤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8월 공임 인상률(4.5%)을 공표한 이후 현대해상과 맺은 계약 기간 만료에 따라 올해 1월부터 해당 인상률을 새롭게 적용받아야 하지만 현대해상 측이 별다른 사유 설명 없이 인상 시기를 늦췄다는 주장이다.

기존에 적용한 2~3%대 인상률로 동결한 채 8개월여 시간이 흘렀다. "인상 시기를 늦추는 이유를 대라"는 요구는 매번 깡그리 묵살됐다. 중고차 수리 단가를 후려치는 수준도 이미 상식선을 벗어난 지 오래됐다는 설명이 잇따랐다. 

지난 7월 입고한 2009년식 NF쏘나타 차량에 대해 B씨는 중고차 시세를 뜻하는 '차량가액'이 200만원인 사실을 참조해 수리비 350만원을 청구했다. 현대해상 측은 240만원만 지급 가능하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B씨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부 사정과 내부 규정'만을 대며 수가를 계속 낮추려고만 했다"며 "공식적인 시세표를 제출하고 따졌더니 결국 처음 청구한 금액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겨우 받을까 말까"라며 "대부분 업체는 현대해상처럼 대형 보험사와 관계가 끊길까 봐 냉가슴만 앓고, 후려친 가격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B씨는 직원 8명이 자신만 바라보고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월급도 못 올려주는 무능한 사장이란 소리를 들어도 처자식 딸린 직원 급여만큼은 밀리지 않겠다며 1억원 정도 대출을 끌어다 썼다.

제때 납부하지 않은 세금이 밀려 신규 인력 채용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일손 부족으로 특성화고교 실습생을 채용하고 싶지만 국세 미납업체로 고용주 자격이 박탈돼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B씨는 "언제까지 보험사에 끌려다닐지···. 이대로는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라며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직원과 그들 가족을 생각하면 오늘도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26일 찾은 서울 성동구 지역 한 폐업한 자동차 정비업체에 입간판만 덩그러니 걸려 있다. [사진=성상영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손해사정권 쥔 甲의 전횡

국토부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전국 자동차 정비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3만6400여 개소로, 이곳에서 근무하는 인력만 9만3800여 명이다. 국내 등록 차량이 2437만대를 넘어선 데다 매년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대부분 업체는 A씨·B씨와 유사 경험이 있다는 반응이다.

특히 손해액과 보상금 지급 여부 등을 조사하는 '손해사정'이 정비업체에 공개되지 않는 실정은 관행으로 굳어졌다. 영업 생리상 공임을 깎아야만 하는 보험사는 손해사정 내용을 밝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더욱이 3년 전에 비해 물가 상승률 11%, 임금 상승 30%, 재료비 인상 10~15% 등 모두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지만 공임 인상률은 한참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김광규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서울영등포협의회장은 "보험사와 수가 계약 시 물가, 인건비, 재료비 인상분이 반영되지 않고 일방적 요금 삭감과 미납, 지급 지연 등이 자행되고 있다"며 "공식 회계법인에 의뢰해 평균 6만8000~8만2000원대 공임을 산출했으나 3년 전 국토부가 발표한 최대 시간당 공임은 3만4000원대, 현재는 3만5000원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보험정비수가를 둘러싼 깜깜이 손해사정 처리 외에도 '자기부담금' '미수선수리비' 관련 불만도 끊이질 않는다. 사고 발생을 줄이고자 보험을 든 고객에게도 일정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부여하는 자기부담금과 관련해 정비업계는 응당 보험사가 고객에게 받아야 하지만 이를 일선 정비업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부품비와 사고 시 차량 대여(렌트) 비용이 비싼 수입차에 대해 보험사는 수리비 중 일부를 미수선수리비로 처리할 때가 많다는 진단도 나온다. 

김 회장은 "보험사가 사고차량 관련 수리비를 미수선수리비로 처리해 고객에게는 예기치 못한 현금이 생기는 셈"이라며 "결국 보험사는 공해방지시설이 없는 무등록 불법 정비업소에 법적인 판금·도장 작업이 불가한 일명 '덴트' 업소로 차량 수리를 유도하는 등 보험사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손해보험협회는 "자기부담금은 자동차보험 표준 약관상 보험사 측에 보험금 지급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금액"이라며 "민법에 의거해 자기부담금을 포함해 정비업체에 수리비를 지급한 보험사는 보험 계약자 등에게 자기부담금 해당액을 청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감독원 표준약관에 따라 자차 손해 시 미수선 수리비 지급은 약관 위배에 해당한다"고 일축했다. 

◆역대급 순익에 눈총받는 보험사···"현장 갈등 불가피"

보험사 갑질을 폭로한 정비업체들이 '생사 기로'에 놓인 사이 4대 손보사는 사상 최대 실적 올리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들 손보사는 정비업계와 수가 관련 견해차가 있는 데 대해 업체마다 규모와 급수(級數)가 상이하고 1년 단위 갱신 계약이 이뤄지는 시차를 지목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업체별 수가 조정 시차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청구와 지급 과정 등에서 마찰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반대로 업체가 과잉 청구하는 곳도 많은데, 상호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보니 현장에서는 (이해관계자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DB손보 관계자는 "일부 공업사 문제로 손해사정을 하면 공업사에서 청구한 금액과 일반적으로 지급하는 금액에 차이가 생긴다"며 "사내 변호사들이 수리비 청구 건에 대해 모든 검증을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과다 청구라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손보업계 1위 삼성화재는 업계 통틀어 유일한 '1조 클럽'에 가입한 상태로, 작년에만 당기순이익 1조900억원을 올렸다. 올해 상반기는 7500억원에 달하는 순익을 거둬 또다시 최대 실적 경신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4대 손보사 실적은 자동차보험업 전체에서 84.7%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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