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수십조 원 규모의 중국 게임시장이 5년 넘게 사실상 닫힌 채 유지되며 게임업계가 조바심을 내고 있다. 중국 당국이 해외 업체를 상대로 현지 게임 유통에 필수적인 판호 발급을 중단했지만 대형 시장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게임사 중 최근 중국 판호를 발급받은 사례는 지난해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 지난 7월 넵튠의 '이터널 리턴: 인피니트' 등 3건에 불과했다.
◆ 중국 당국, 2021년 6월 이후 국산 게임에는 판호 발급 3건 불과
판호는 중국 정부가 게임과 서적 등 '출판물'에 허가를 내주는 중국 내 제도다. 판호가 없으면 중국 현지 내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국산 게임들에 판호 발급이 중단된 것은 2016년 우리 정부와 중국 공산당이 국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갈등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사드 갈등 이후 중국은 '한한령(限韓令)'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판호 발급이 막히기 시작해 2020년 12월 컴투스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가 발급받을 때까지 4년가량 진출이 제한됐다.
사드 갈등이 어느정도 잠잠해진 지난해에도 게임업계의 중국 진출에는 악재가 계속됐다. 업계에선 코로나19 상황으로 비대면 수요가 늘며 게임 이용자가 많아질 것으로 봤지만, 중국 당국은 지난해 6월경부터 "청소년들이 게임에만 빠져든다"며 규제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는 해외 게임은 물론 중국산 게임 전체에 대해 판호가 단 한 건도 발급되지 않았다.
2017년부터 올 8월까지 판호를 발급받은 국내 게임은 손에 꼽을 정도다. 2017년에는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창전왕자' 등 11종에 판호가 발급됐지만 2018·2019년엔 허가를 받은 게임이 없었다. 2020년 서머너즈워: 천공의 아레나가 유일하게 한한령 이후 3년 10개월여 만에 판호를 발급받았다. 지난해에는 핸드메이드게임의 '룸즈: 풀리지 않는 퍼즐(2월)'과 펄어비스 검은사막 모바일(6월) 등 2건에만 판호가 나왔고, 올해는 넵튠의 모바일 게임 이터널 리턴: 인피니트(7월)가 허가를 받은 유일한 국산 게임이다.
◆ 50조 원 이상 중국 게임 시장…업계는 "주시하고는 있다"
중국게임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 게임시장 규모는 2965억 위안(약 55조 원)으로 추정됐다. 전세계 단일 시장으로는 최대 규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집계한 2020년 게임 이용자 수만도 6억 명 이상이다. 게임업체가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앞서 판호를 발급받는 데 성공한 국산 게임들의 흥행 사례도 있다. 넥슨 '던전앤파이터'와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는 막대한 매출과 함께 장기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게임업체들은 최근 모바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중국 진출에 성공한 모바일 게임은 몇 건 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은 지난 6월부터 판호를 매달 발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청소년 규제로 판호 발급을 완전히 막은 이후 1년여 만이다. 현재는 중국 업체들에만 다소 한정된 모습이지만 발급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소식에 업계가 주목하기도 했다.
한 국내 게임업체 관계자는 "6월 들어 중국 일부 게임에 대해 판호 발급이 다시 시작돼 국내 업체들의 물밑 접촉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현지 양대 업체인 텐센트와 넷이즈는 빠져 국산 게임들의 판호 발급까지는 요원하다는 시각이 다수"라고 전했다.
◆ 지난 정부·새 정부 모두 사실상 손 놔…'칩4'·'대만 갈등' 등 대외적 여건도 여전
중국 당국 입맛을 일방적으로 맞춰야하는 이같은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그동안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베이징올림픽 개막 전 한한령 관련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언급을 내놨지만 실질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현 정부 역시 '이대남(20대 남성)'과 게임업계 눈길을 끄는 게임 관련 공약을 내놨지만 판호 관련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게임을 국내법 사각지대에서 들여오자는 취지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전부개정안도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대외적 여건도 개선되려면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 '칩4'와 관련 우려되는 중국 측 보복에 게임업계도 불똥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중국과 대만 간 갈등으로 중국에 대한 대외적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중국 기업과의 협업을 다소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국내 업체들은 중국이 막힌 뒤 동남아·북미·유럽 등 타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게임의 경우 한국 내에서 영업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우리 게임이 중국에 진출하려면 온갖 수모를 다 겪는다"며 "중국이 우리 게임을 규제하니 우리도 중국 게임을 규제하자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불공정하다는 인식으로 정책이 진행됐으면 한다. 판호 발급에 정부가 공식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 첫걸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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