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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상의 정론직필] [사설] 파업하는 의사, 줄사표 던지는 검사… 책임은 없고 권한만 챙기는 '엘리트의 일탈'

2025-11-18 09:44:20
기원상 칼럼니스트

[이코노믹데일리] 최근 의료대란에 이어 검찰에서까지 검사장들의 줄사표 사태가 벌어지며 우리 사회의 핵심 전문직 집단이 얼마나 쉽게 공공성을 저버릴 수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생명과 정의를 책임진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직역 이익’이나 ‘조직 내부 갈등’ 앞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집단적이고 공격적인 저항을 선택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회 지도층이자 오피니언 리더로 여기지만, 정작 국민 앞에서는 책임보다 권한을 먼저 행사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의료대란과 줄사표 사태, 본질은 같다

의사들의 대규모 진료 거부는 국민 생명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은 것이고, 검사장들의 줄사표는 국가 형벌권을 담당하는 조직의 안정성을 자기들 내부 정치의 희생양으로 만든 것이다.
한쪽은 환자를, 다른 쪽은 형사 정의를 뒤흔드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그 본질이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특히 검사장들의 줄사표는 그 자체만으로 조직의 상층부가 공적 책임을 방기했음을 보여준다. 특정 사건의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견’이 ‘항명’으로, 항명이 ‘줄사표’로 이어지는 것은 이미 공적 판단의 선을 넘어선 행위다.
사표는 의견 개진이 아니라 압박 수단으로 이해된다. 국가기관의 권한이 사조직 내부의 파워게임에 악용되는 셈이다.

◇공공 권한은 집단이기주의의 자산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들은 공적 권한을 갖고 있지만, 공적 책임은 종종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한다.
의사 면허와 판·검사의 직무는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수호하라는 권능이자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위기 순간마다 책임을 내던지고,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앞세운다.

의사 파업으로 응급실이 마비되고, 검사 줄사표로 사법 시스템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상황은 단순한 갈등이나 잡음으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은 이들의 행동이 사회 전체의 비용을 급격히 키운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부 갈등을 왜 국민이 떠안아야 하는가

검사장 줄사표 사태는 그야말로 조직의 난맥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행위다.
공직자라면 마땅히 내부 의견 차이를 공식 절차를 통해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것은 절차는 뒷전이고, ‘집단 사표’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태도다.

이는 사법 정의의 연속성을 해칠 뿐 아니라, 검찰 조작·정치 개입 논란을 경험해온 국민에게 또 다른 불신의 근거를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줄사표는 공공선의 실종을 넘어 조직의 신뢰 자체를 허무는 행위다.

◇국민 신뢰를 잃은 지도층은 더 이상 지도층이 아니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의사·판사·검사 등 전문직에 높은 권위와 신뢰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신뢰의 대가’였음을 종종 잊고 있다. 그 신뢰가 한 번 무너지면, 그 권한 역시 지속될 수 없다.

요구가 있다면 대화하고 조정하면 된다. 이견이 있다면 제도 안에서 해결하면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선택한 것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국가 시스템을 흔들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방식이었다.

이는 더 이상 지도층이 아니라, 단지 권한을 지렛대로 삼는 집단이기주의의 극단적 형태일 뿐이다.

◇이제는 책임의 무게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전문직 집단의 파업과 줄사표 사태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들이 정말로 사회의 지도층인가, 아니면 특권층인가?”

특권이 아닌 지도층으로 남고 싶다면 답은 명확하다.
국민을 협상 수단으로 삼는 행태부터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의사든 판사든 검사든, 공적 권한을 가졌다면 공적 책임을 회피할 권리는 없다.

국민의 신뢰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신뢰를 잃는다면, 이들 전문직 집단의 권위도 결국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