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현대자동차그룹이 자사 총수를 정의선 회장으로 변경해달라는 요청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정 회장이 부회장 직함을 달고 경영 일선에 나선 2018년 이후 3년만이다. 정 회장의 그룹내 입지가 확고해 졌음을 의미하는 행보다. 정몽구 명예회장 퇴진, 그리고 오너 경영인으로써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해야 한다는 숙제가 놓였다.
1970년생인 정의선 회장 올해로 52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199년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시작해 2009년 현대차 부회장, 2013년 현대모비스 기획실 부회장으로 경력을 쌓았다.
정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8년 8월 그룹 총괄부회장에 오른 이후다. 오픈이노베이션, 고성능차 브랜드(N라인) 론칭, 자율주행, UAM 투자, 로보틱스 사업 강화, 미래 모빌리티 역량 제고를 위한 60조 원 투자(2025전략) 등 혁신적인 행보를 걷는 중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자동차 산업 변방이던 한국을 글로벌 5위 완성차 제조국으로 성장시켰다. 유산을 받은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내연기관 제조사에서 탈피, 독보적인 미래 모빌리티 기업 반열로 올리는 비전을 내놨다.
◆ '오너 총수' 정당성 확보가 과제…계열사 지분 퍼즐 맞추기 시작
현대차그룹 총수 변경은 작년 10월 정의선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그룹 전반의 경영, 미래 전략 수립 등 새 판 짜기에 나섰고, 놀라울 만한 성과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만 경영 능력을 보여줬음에도 아직 경영권 확보, 전기차 패권 전략, 글로벌비지니스센터(GBC) 건립 등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룹 총수이자 오너경영인으로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 회장의 현대차그룹 핵심 계열사 지분율은 현대차 2.62%, 기아차 1.74%, 현대모비스 0.32%에 불과하다. 정몽구 명예회장 보유 지분(현대차 5.33%, 현대모비스 7.13%)을 더해도 두 자릿수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율이 낮다.이에 재계에서는 정 회장 중심의 성공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현대자동차 지분 21.43%을 통해 그룹 핵심 사업 경영권을 확보하고, 현대차의 기아 지분(33.88%)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정의선 회장이 현대모비스로 향하는 순환출자 지분 23.7%를 모두 인수하는 것이다. 다만 비용이 문제다.
메리츠종합증권 김준성 애널리스트가 지난해 10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정 회장이 기아차(17.3%), 현대제철(5.8%), 현대글로비스(0.7%) 지분을 매입할 경우 총 5조2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오너가가 동원할 수 있는 현금 추정액(3조원 내외)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지난 2018년부터 정 회장은 보유 주식을 활용한 현금 창출, 지분을 통한 계열사 지배력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준비왔다. 계열사 간 주식 양수도, 주식 교환, 지분 가치 최대화 후 매각 등의 방안이다.
계열사 성장 동력을 만들고, 실적을 개선해 지분 가치를 높이는 작업은 상당 부분 진행됐다. 가장 집중하는 계열사는 현대글로비스(지분 23.29% 보유), 현대엔지니어링(11.72%), 현대오토에버(9.57%), 이다.
최근 성사된 현대오토에버, 현대오트론, 현대엔엔소프트 합병이 대표적인 행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 이라는 청사을 함께 내놓으며 기업 가치를 크게 키웠다.
현대글로비스는 전기차 충전소 운영, 수소 인프라 구축, 배터리전기차 배터리 리스사업, 중고차 거래 등의 신 사업을 추가하며 가치를 키우고 있다. 지분 매각, 현대모비스 분할 사업부(모듈·AS부품)와 합병 등이 가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현대글로비스가 기아, 현대제철이 보유한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안도 있다.
의결권 없는 자사주도 인적 분할시 의결권이 부활하는 것을 막는 상법개정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황도 지배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하는 배경으로 꼽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는 "소통, 신사업 투자, 순혈주의 포기 등 정의선 회장 체제 이후 그룹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라며 "경영능력을 보여 준 만큼 승계에 있어서도 큰 문제 없도록 준비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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