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이승련 부장판사)는 지난 1일 KCGI가 한진칼을 대상으로 낸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쟁점으로 꼽혔던 한국산업은행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경영권 개입과 무관하다는 판단이다. 벼랑 끝에 몰린 국내 항공업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는데 중점을 뒀다.
법원 결정에 힘입어 산은은 기존 계획대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우선 한진칼 유상증자(5000억원) 참여와 교환사채(3000억원, 교환대상은 대한항공 주식) 인수를 통해 총 8000억원을 지원한다. 한진칼은 조달한 자금을 대한항공에 우선 대여하고 향후 대한항공 신주와 상계할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2조5000억원 규모 유증(일반주주 배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발행주식수는 1억7361만주이며 예상 발행가액은 1만4400원이다. 지난 1일 기준 대한항공 주가는 2만6350원으로 발행가는 무려 45% 싸다. 현 주가 수준이 유지된다면 최대주주인 한진칼은 물론 여타 주주에게 메리트 있는 가격이라 할 수 있다.
통상 유증을 위한 가격결정은 일정 기간동안 가격추이(1개월, 1주일, 기산일 종가 산술평균 가액과 기산일 종가 중 낮은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주가 상승 하락 여부에 따라 발행가도 높아지거나 낮아지게 된다.
올해 3분기 기준 대한항공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기업가치(EV)는 9.2배다. 통상 EV는 시가총액과 순차입금을 합산해 구한다. 대한항공 순차입금은 1조4000억원 규모로 주주들은 유증참여시 EV/EBITDA 8배 수준에서 투자하는 격이다.
대한항공은 영업이익은 올해 2분기를 제외하고 적자를 기록했다. 3분기 누적기준 영업이익은 –117억원, 당기순이익은 –7731억원이다. EV/EBITDA 기준으로 대한항공 기업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자비용에 있다. 매년 4000억~6000억원가량 발생하고 있어 상당한 부담이다.
국내 항공업의 근본적 문제로 지적되는 사항은 과도한 부채와 항공기 리스에 따른 현금흐름 등이다. 3분기 누적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은 8800억원이다. 영업을 위해 중요한 항목이지만 재무활동현금흐름 계정에 반영되는 리스료 관련 비용(유동성리스부채상환 1조2000억원, 이자 지금 4000억원)이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대한항공은 영업을 하기 위한 근본적인 구조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대한항공이 유증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제3자 배정, 1조5000억원)에 쓴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의 3분기 누적 영업활동현금흐름은 –1944억원이다. 리스부채 상환으로 7158억원이 유출되면서 총 9000억원 규모 자금이 빠져나갔다. 양사 합산 기준으로 보면 항공업을 영위하는데 무려 1조7000억원이 순유출된 셈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로 양사 재무구조 개선이 기대되지만 현 상황이 지속되면 조달한 자금을 소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주주 입장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유증은 ‘주주가치 희석’ 탓에 부정적 시선이 강하다”면서도 “기업 수요 대비 공급을 맞추기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 차원에서 신주발행을 할 때는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항공 일반주주는 발행가액이 현 주가 대비 상당히 낮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주관사들 입장에서도 거래 성사를 위해 고심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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