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올 하반기 수도권 ‘로또 청약’으로 불리던 주요 단지들이 연달아 분양을 미루면서 내년 청약시장이 두 갈래의 부담을 떠안고 있다. 분양가 급등과 중소형 건설사의 생존 위기다.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에 머물고 건설 자재비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가운데 대형 건설사들이 일정을 늦추는 움직임이 시장 전체의 균형을 흔들고 있다.
2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이앤씨가 내년 2월로 연기한 서울 서초구 ‘오티에르 반포’는 당초 3.3㎡당 8500만원 전용 84㎡ 기준 28억원대에 책정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환율과 자재비를 다시 반영하면 분양가는 이보다 상당폭 올라갈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환율 고착화가 원가 상승을 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원달러 환율은 1471원을 기록한 뒤 146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9월 기준 건설용 수입 중간재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4.0% 올랐고 건설공사비지수는 131.66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철근 시멘트 레미콘 전선 케이블 등 주요 자재가 전방위로 상승하고 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분양을 몇 달 늦추면 그 사이 비용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 만큼 평당 1000만원 정도는 더 받아야 사업성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3년 동안 분양이 연기된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재분양 시 평균 12~18% 가격을 올렸다. DL이앤씨가 내년으로 미룬 노량진8구역 ‘아크로 리버스카이’ 역시 당초 기대보다 분양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분양 연기가 결국 대형 건설사에 ‘원가 재정비 시간’을 주는 셈이라고 분석한다. 수입 자재 의존도가 높은 시장에서 환율이 고착화되면 분양가 상승 압력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재무 여력이 충분한 대형 건설사만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점이다. 대형 건설사들은 대규모 자재 계약과 해외사업으로 변동성을 흡수할 여력이 있다. 분양을 미뤄도 회사 운영에 큰 흔들림이 없어 시장을 관망하며 최적 시점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반면 중소형 건설사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단기 조달 비중이 높아 환율과 자재비 상승이 즉시 원가에 반영된다. 수도권의 한 중소형 건설사 대표는 “분양을 미루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다”며 “분양 대금이 끊기면 다음 사업이 막히고 자재비가 오르면 수익성 자체가 사라진다”고 털어놨다.
체력 고갈은 폐업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사는 486곳으로 전년 대비 11.7% 늘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전문건설업 폐업도 지난달까지 2083곳에 달했다.
실제 시장에서 격차는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경기 남부에서 최근 분양에 나선 한 중소형 건설사의 600가구 규모 단지는 계약률이 60%대에 그쳤다. 대형 건설사가 일정을 미룬 사이 시장에 중소형사 물량만 공급되면서 수요자들의 관망세가 깊어진 영향이다.
업계는 내년 하반기를 더욱 우려한다. 정부 공급대책에 따라 착공 물량이 늘어나는 시점과 겹치면 재고 부족과 수요 증가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경기 침체로 최소한만 유지해 온 자재 재고가 고갈된 상황에서 수입 자재가격이 급등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경고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시장 위축이 심해질수록 브랜드 선호가 강해지고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격차가 벌어진다”며 “자재비 급등까지 맞물리면 중소형사의 연쇄 부도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올해 10월 기준 상위 10개 건설사의 분양 계약률은 평균 82%, 중소형사는 63%에 그쳤다. 규제가 강화된 11월에는 이 격차가 30%포인트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중견사는 이미 M&A나 사업 철수를 논의하는 단계까지 왔다.
결국 부담은 청약 수요자에게 돌아간다. 분양가가 내년 3억~5억원 오르면 당첨 후 자금 마련에 실패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직장인 김모 씨는 “오티에르 반포를 기다리고 있는데 분양가가 3억원만 올라가도 대출 규제 때문에 계약을 못 한다”며 “기다릴수록 내 집 마련은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은 원가 상승분을 흡수할 여유가 거의 없다”며 “비용 상승과 분양가 인상 수요 위축이 반복되면 회복 속도는 더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내년 상반기 분양시장은 ‘30억 시대’ ‘업계 재편’ ‘자재비 쇼크’라는 세 가지 변수 속에서 출발선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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