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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공사 늦춘 대가 132억… 법원 "약속한 기준 어겼다"

한석진 기자 2025-11-06 09:57:52

소비자물가 기준 합의했는데 세 배 넘는 인상 요구

기본 절차 미루며 사업 지연… 계약 해제 정당 판결

현대건설 계동 사옥. [사진=현대건설]

[이코노믹데일리] 현대건설이 정비사업 공사비를 크게 올려달라며 공사를 시작하지 않아 132억5500만원을 배상해야 하는 판결이 나왔다. 당초 양측은 공사비를 올릴 때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기준으로 삼기로 약속했지만 현대건설이 이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요구한 것이 분쟁의 원인이 됐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민사부는 지난해 10월 한국토지신탁이 현대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한국토지신탁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현대건설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공사를 미뤘다고 판단해 계약보증금 전액과 부가가치세를 합친 132억5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두 회사가 충돌한 사업은 대구 중구의 78태평상가아파트 가로주택정비사업이다. 한국토지신탁은 2018년 10월 사업 시행자로 지정된 뒤 2020년 5월 현대건설과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공사비는 1205억원 규모였고 추가 변경계약도 체결해 주민 이주는 2023년 2월 모두 끝난 상태였다.
 

문제가 된 부분은 2022년 9월 현대건설이 공사비를 488억원 올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이 가운데 물가 상승을 이유로 한 인상분만 386억원이었다. 하지만 계약에서 정한 기준에 따르면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8.42%였다. 다시 말해 현대건설이 요구한 인상분은 계약상 기준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토지신탁은 이런 요구가 계약에서 정한 범위를 벗어난다고 보고 여러 차례 증액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공사를 시작하는 절차를 진행하라고 요구했지만 현대건설은 공사비 조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공사는 시작되지 못했고 사업은 장기간 멈춰섰다.
 

한국토지신탁은 2023년 10월 현대건설에 계약을 해제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어 그해 11월 계약에서 정한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계약 내용에는 시공사의 잘못으로 계약이 해제될 경우 계약보증금이 발주처에 귀속된다는 조항이 있었고 한국토지신탁은 바로 이 금액과 세금을 함께 청구했다.
 

현대건설은 재판에서 소비자물가지수는 실제 물가 상승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기준으로 삼을 수 없고 한국토지신탁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의를 사실상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경제 상황이 크게 변해 계약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 현대건설이 소비자물가지수 조항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고 발주처가 조항을 강요했다고 볼 근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경제 상황 변화 역시 계약 효력을 뒤집을 만큼 중대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시공사가 계약에서 정한 기준을 스스로 뒤집으며 공사를 미루면 그 책임이 매우 무겁다는 점이다. 정비사업에서 공사가 늦어지면 금융비 부담과 조합원 피해가 커진다는 점에서 착공 지연은 단순한 계약 문제가 아니라 사업 전체에 영향을 준다. 법원은 현대건설의 요구가 합의된 기준을 크게 벗어났고 이를 이유로 기본 절차까지 미룬 점을 강조하며 책임을 시공사에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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