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들어가며]
데스크 견장을 달고 내딛는 첫 칼럼입니다. 지레 겁먹고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래도… 써야죠. 글쟁이 운명이죠. 단 한 음절에도 혼(魂)을 담겠습니다. 주요 금융 '최고경영자(CEO) 사법리스크'를 데뷔작으로 올립니다.
채용비리 혐의 피고 H 등장. 대법원 포토라인에 서자 카메라 셔터가 터지고 취재진 질문이 쏟아진다. 담담한 표정의 H. "합리적 판단을 기다리겠다"며 법정에 들어선다.
#S 2.
엄숙한 분위기 속 판결문 낭독. 1심 무죄를 뒤집은 2심 유죄 판결로 막판 역전을 고대한 H 표정은 붉으락푸르락. 주심 대법관 최종 판결이 정적을 깬다.
#S 3.
다시 포토라인에 선 H. "우선 송구하고 잘 판단해주신 재판부에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필자가 그린 가상 시나리오다. 금융권에선 통상 하나금융을 H로 일컫는다. 자산 규모 600조원, 연순익 3조4000억원이 넘는 국내 3대 금융그룹이다. 주연 배우 H는 하나금융 이니셜과 같은 현직 회장이다.
관객 반응은 싸늘하다. 손익도 마이너스다. 뻔하고 진부한 결말이 혹평 배경이다. 관객은 이미 다수 전작(前作)을 시청했다. 현역 최고령(만 68세) 배우 H 출연에도 흥행 참패다.
대표 전작에는 조용병(67) 현 은행연합회장이 등장한다. 직전 신한금융 회장이다. H와 2년여 전 동일한 채용비리 혐의로 최종심 끝에 무죄를 받았다. 세 번째 연임 포기 당시 "남편, 아빠, 할아버지로 최선을 다하겠다"던 조 회장은 보란 듯이 1년 만에 재기했다.
또 다른 전작 배우는 손태승(65) 우리금융 회장이다. 수조 원에 달한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원조(元祖) 격이다. H 역시 DLF 불완전 판매를 둘러싼 관리 부실로 당국 중징계를 받았다.
항소심에서 법원은 H 손을 들어줬다. 손 전 회장도 앞서 최종 무죄를 받았다. H를 향한 당국 상고(上告) 기류가 감지된다. 일찌감치 결말이 예상된다. 당국과 H 주연 차기작은 보나 마나 실패다.
H는 채용비리 꼬리표 떼기에 사활을 건다. 지난 2015년 채용 청탁에 연루한 업무 방해 혐의에 휘말렸다. "남성을 많이 뽑으라" 지시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의혹도 불거졌다.
취재 결과 H는 대법에 사건이 접수된 작년 12월 이후 변호인단을 꾸렸다. 상고 이유 등 법리 검토는 지난달 본격 개시했다. 상반기 결판이 날 듯 하다. 사법적 아킬레스건을 털 공산이 크다. 조 회장 판례가 주요 근거다.
사법리스크는 치명적이다. '고객 신뢰' 간판, 이미지가 생명인 금융사는 초민감하다. 언론 취재에 육탄 방어 태세를 갖춘 이유다. 적어도 필자가 금융부 기자로 뛴 최근 5년은 그랬다. 배우만 다를 뿐 뻔할 뻔 자의 법정 공방 스토리, 이젠 신물난다.
법리상 무죄 판결에도 관객이 바라는 반전 포인트는 따로 있다. 관객은 곧 고객이다. 대(對)국민까지는 거창하다. 대고객 사과의 모습을 보길 원한다.
조 회장도, 손 회장도 없었다. 최소한 필자가 만난 금융그룹 CEO 중 사법리스크 책임을 통감하며 전면에 나서 유감성명을 낸 인사는 전무했다.
갈 데까지 가보자식 당국 스탠스도 문제다. 금융감독원이 시발점이다. '금감원 콧방귀도 법'이라던 말은 사라진지 오래다. 자존심 '스크래치'를 운운하기에는 행정력 낭비 수준이 도를 넘었다.
CEO 제재에 혈안된 기존 감독 시스템을 뜯어볼 시점이다. 취재마다 "충분한 검토를 마쳤다", "자신 있다"던 금감원 측이다. 줄줄이 패소에 관한 해명을 듣기에도 민망하다.
전례가 없지만 이유 불문한 H의 도의적 책임 발언을 기대한다. 당국발 깔끔한 소송 취하도 금융판 법정드라마의 막판 시청률을 높일 변곡점이다.
[들어가며]
데스크 견장을 달고 내딛는 첫 칼럼입니다. 지레 겁먹고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래도… 써야죠. 글쟁이 운명이죠. 단 한 음절에도 혼(魂)을 담겠습니다. 주요 금융 '최고경영자(CEO) 사법리스크'를 데뷔작으로 올립니다.
#Scene 1.
채용비리 혐의 피고 H 등장. 대법원 포토라인에 서자 카메라 셔터가 터지고 취재진 질문이 쏟아진다. 담담한 표정의 H. "합리적 판단을 기다리겠다"며 법정에 들어선다.
#S 2.
엄숙한 분위기 속 판결문 낭독. 1심 무죄를 뒤집은 2심 유죄 판결로 막판 역전을 고대한 H 표정은 붉으락푸르락. 주심 대법관 최종 판결이 정적을 깬다.
#S 3.
다시 포토라인에 선 H. "우선 송구하고 잘 판단해주신 재판부에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필자가 그린 가상 시나리오다. 금융권에선 통상 하나금융을 H로 일컫는다. 자산 규모 600조원, 연순익 3조4000억원이 넘는 국내 3대 금융그룹이다. 주연 배우 H는 하나금융 이니셜과 같은 현직 회장이다.
관객 반응은 싸늘하다. 손익도 마이너스다. 뻔하고 진부한 결말이 혹평 배경이다. 관객은 이미 다수 전작(前作)을 시청했다. 현역 최고령(만 68세) 배우 H 출연에도 흥행 참패다.
대표 전작에는 조용병(67) 현 은행연합회장이 등장한다. 직전 신한금융 회장이다. H와 2년여 전 동일한 채용비리 혐의로 최종심 끝에 무죄를 받았다. 세 번째 연임 포기 당시 "남편, 아빠, 할아버지로 최선을 다하겠다"던 조 회장은 보란 듯이 1년 만에 재기했다.
또 다른 전작 배우는 손태승(65) 우리금융 회장이다. 수조 원에 달한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원조(元祖) 격이다. H 역시 DLF 불완전 판매를 둘러싼 관리 부실로 당국 중징계를 받았다.
항소심에서 법원은 H 손을 들어줬다. 손 전 회장도 앞서 최종 무죄를 받았다. H를 향한 당국 상고(上告) 기류가 감지된다. 일찌감치 결말이 예상된다. 당국과 H 주연 차기작은 보나 마나 실패다.
H는 채용비리 꼬리표 떼기에 사활을 건다. 지난 2015년 채용 청탁에 연루한 업무 방해 혐의에 휘말렸다. "남성을 많이 뽑으라" 지시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의혹도 불거졌다.
취재 결과 H는 대법에 사건이 접수된 작년 12월 이후 변호인단을 꾸렸다. 상고 이유 등 법리 검토는 지난달 본격 개시했다. 상반기 결판이 날 듯 하다. 사법적 아킬레스건을 털 공산이 크다. 조 회장 판례가 주요 근거다.
사법리스크는 치명적이다. '고객 신뢰' 간판, 이미지가 생명인 금융사는 초민감하다. 언론 취재에 육탄 방어 태세를 갖춘 이유다. 적어도 필자가 금융부 기자로 뛴 최근 5년은 그랬다. 배우만 다를 뿐 뻔할 뻔 자의 법정 공방 스토리, 이젠 신물난다.
법리상 무죄 판결에도 관객이 바라는 반전 포인트는 따로 있다. 관객은 곧 고객이다. 대(對)국민까지는 거창하다. 대고객 사과의 모습을 보길 원한다.
조 회장도, 손 회장도 없었다. 최소한 필자가 만난 금융그룹 CEO 중 사법리스크 책임을 통감하며 전면에 나서 유감성명을 낸 인사는 전무했다.
갈 데까지 가보자식 당국 스탠스도 문제다. 금융감독원이 시발점이다. '금감원 콧방귀도 법'이라던 말은 사라진지 오래다. 자존심 '스크래치'를 운운하기에는 행정력 낭비 수준이 도를 넘었다.
CEO 제재에 혈안된 기존 감독 시스템을 뜯어볼 시점이다. 취재마다 "충분한 검토를 마쳤다", "자신 있다"던 금감원 측이다. 줄줄이 패소에 관한 해명을 듣기에도 민망하다.
전례가 없지만 이유 불문한 H의 도의적 책임 발언을 기대한다. 당국발 깔끔한 소송 취하도 금융판 법정드라마의 막판 시청률을 높일 변곡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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