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배상에 관한 당국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금융사가 먼저 배상할 경우 배임 등 또 다른 문제까지 제기될 우려 때문에 은행들은 난감한 모습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6일부터 주요 ELS 판매사(은행 5곳·증권사 6곳)에 대한 2차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1차 검사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유형화·체계화하는 것을 중점으로 했다.
동시에 당국은 ELS 관련 피해가 확대되는 만큼 판매사들이 선제적인 자율배상할 것을 요청했다.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은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인 자율배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최소 50%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사는 당국의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전망이다. 시중은행들은 홍콩H지수 연계 ELS 관련 배상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지만, 내부적으로 선제적 자율배상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배상한다는 건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는 것인 데다 또 어느 범위의 가입자까지 배상해야 한다는 건지도 명확지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당국의 배상 가이드라인 없이 은행마다 다른 기준으로 배상안을 내놓을 경우, 동일한 구조의 상품을 A은행에서 가입한 사람과 B은행에서 가입한 사람이 다르게 배상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불완전판매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판매사가 투자자가 입은 손실을 보전해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1차 현장검사에서 불완전판매 사례가 확인됐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었지만, 아직 사실이란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들은 명확한 근거 없이 자율배상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결국 ELS 피해에 대한 배상에 나선다는 것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자인하게 되는 셈으로 향후 소송 등 법적 다툼에서 은행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배임과 과징금 문제도 자율배상이 힘든 이유로 지목된다. 자율배상을 했다가 수익성이 악화해 주주 이익과 상충하면 배임 소지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모든 판매가 불완전판매일 리가 없는데 불완전판매가 아닌 가입 건까지 배상한다면 배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ELS 사태의 경우 기존 라임 등 사모펀드와 달리 상품 설계부터 문제가 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 사례별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위반 여부를 일일이 따져봐야 하므로 자율배상은 힘들다고 주장한다.
금소법에서는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고 불완전판매했을 때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한다.
만약 은행이 먼저 자율배상에 나서더라도 수만명에 달하는 투자자별 금소법 위반 여부를 살펴봐야 하고, 이후 당국의 책임 분담 기준안에 따라 다시 배상 수준을 결정해야 해서 은행들은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될 금감원의 홍콩 ELS 책임 분담 기준안을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기준안이 나오더라도 실제 배상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정확지 않다. 투자자들의 배상 수준과 사례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앞서 5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이 판매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 만기 도래 규모는 지난 15일까지 1조174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고객이 돌려받은 돈(상환액)은 5384억원으로 확정 손실률은 54.2%(손실액 6362억원)를 기록했다.
홍콩H지수 ELS는 통상 가입 후 3년 뒤 만기가 됐을 때 H지수가 가입 당시의 70% 이상이면 원금과 이자를 받는 파생상품이다. 하지만 지수가 70% 아래로 떨어질 경우 하락률만큼 원금을 잃게 되는 구조다. 2021년 1~2월 당시 1만1000~1만2000선을 넘어섰던 H지수는 최근 5200~5300대로 주저앉았다.
올해 상반기에 다가오는 H지수 ELS 만기는 10조2000억원(1분기 3조9000억원·2분기 6조3000억원)이다. H지수가 반등 없이 현재 수준인 5300선을 유지한다면 누적 손실액이 이달 말에 1조원을 돌파하고 4월에는 3조원, 올해 상반기 중으로는 4조원을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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