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오는 2025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가 의무화되지만 시스템을 갖추기는커녕 가이드라인조차 없어 시행 전부터 파행이 우려된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국내 기업 100곳의 ESG 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ESG 공시 의무화 시점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27일 대한상의에 따르면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최소 1년 이상 미루고 2~3년가량 공시 정보 미흡 등에 대해 책임 면제 기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응답이 56%로 나타났다.
이어 기존 안대로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2025년, 나머지 상장사는 2030년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코스탁 기업은 제외해야 한다는 답변은 27%였다. 기존 안보다 더 강하게 기준을 적용해 자산 1조원 이상 기업은 2027년부터로 앞당기고 자산 5000억원 이상 코스닥 기업도 포함하자는 의견은 14%에 그쳤다.
조사 기업 중 88%는 ESG 공시가 중요하다고 동의하면서도 준비는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응답 기업 중 ESG 자율 공시를 하는 기업은 53%였고 준비 중이라고 답한 곳은 26%, ESG 공시를 준비 중이지 않은 기업도 21%나 됐다.
또한 자율 공시 중인 기업 중에서도 내부 인력만으로 해결하는 곳은 9.4%에 불과했다. 기업 자체적으로 ESG 전산 시스템을 보유한 기업은 14%였다.
조사에 참여한 A 대기업 ESG 담당 임원은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없고 표준 플랫폼도 없어 기업이 자체적으로 배출량을 측정하고 공시해야 한다"며 "이래선 투자자들도 상호 비교가 불가능하고 기업만 공시에 대한 위험 부담을 진다"고 꼬집었다.
사업장에서 직접 배출한 온실가스 이외에 협력사를 포함한 생산 과정 전반에 걸쳐 배출량을 규제하는 스코프(SCOPE) 3와 관련해서도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많았다. 조사 기업 중 44%는 스코프 3 배출량을 공시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준비 중인 기업은 24%였다. 현재 공시를 하는 기업은 32%였다.
B 대기업 지주사 ESG 담당 직원은 "배출량을 측정하는 전사(全社) 시스템을 갖추는 데만 3~4년이 걸리는데 스코프 3 공시나 연결 기준 스코프 1·2 공시는 당장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국내 ESG 공시 제도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수립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국내 상황에 맞춰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이 74%로 압도적이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ESG 공시 의무화는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위해 추진돼야 하지만 규제가 아닌 지속 가능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유예 기간을 충분히 주고 명확, 간소한 기준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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