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ESG

[현장에서] 코로나19도 막지 못한 열기...애증 교차한 삼성전자 주총

이범종 기자 2020-03-18 14:34:02

참석자 400명으로 절반 줄었지만 해고자 관련 발언만 두차례 나와

코로나 대책에 관심 높아…위기상황 대비해 의사·앰뷸런스 준비도

18일 오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 5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이 인사말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데일리동방] "8구역에 발언권 신청하신 분... (혼잣말로) (마이크) 또 주는 것 아니야?"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의 눈빛이 사선을 그렸다. 원치 않아도 불러야 하는 손님, 시위하는 주주 때문이다.

18일 오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1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는 애증이 교차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약 1400석을 마련했지만 실제 참석한 주주는 400여명에 그쳤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책과 노조 문제 해결, 경쟁력 제고 주문 목소리가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시위 주주 고성에 "퇴장 바랍니다"

삼성중공업 해고자 이재용씨가 발언권을 얻자 장내는 술렁였다.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단식농성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소속이라고 밝힌 조선아씨가 강남역 고공농성 해고자 김용희씨를 거론한 지 20여분 만이었다.

이씨는 "돈만 번다고 기업이 아니고 인간적인 기업이 돼야 한다"고 회사를 다그쳤다. 주총 의장인 김기남 부회장은 "이상으로 CE(가전사업) 부문 질의응답을 마치겠다"며 순서를 정리했다. 영업 보고에 이어 CE 부문 질의 시간에서도 주제와 관련 없는 발언이 나와서다.

참석 주주가 대폭 줄었음에도 공대위 관계자 두 명에게 발언권을 내준 김 부회장은 난감해했다. 이를 에둘러 저격한 쪽은 또 다른 주주였다. 5구역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주주는 "현 정권에 반기업 정서가 있는데, 웅비하는 삼성에 노조 문제도 엄청난 장애 요인이 될 것 같다"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물었다. 김 부회장은 적법한 노동행위 보장과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두 사람이 고성을 지르자 김 부회장은 의장 권한으로 이들을 내보냈다. 상법 제366조의 2를 보면 주총 의장은 일부러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발언이나 행동하는 사람을 퇴장시킬 수 있다.

조씨와 이씨는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적힌 붉은 플래카드를 펼치며 건물을 나섰다. 이를 지켜본 다른 주주는 "회의 진행상 (고성 등) 지나친 측면이 있었지만 그분들을 위로할 필요가 있지 않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부회장이 인사말에서 언급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18일 오전 삼성전자 주주총회장에서 주주 자격으로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판한 이재용씨와 조선아씨가 주총 진행 방해로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코로나19 대책 질의에 "더 연구하겠다"

고비를 넘긴 주총은 2019년 재무제표 승인과 사내이사 선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등을 순서대로 가결했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과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을 추천했다. 주주들은 90% 넘는 지지로 힘을 실어줬다.

이날 주주들 주된 관심은 코로나19 대응 방침이었다. 지난해까지 무선사업(IM) 부문장을 지낸 고동진 사장은 "코로나19는 다른 나라에서 시작하는 단계여서 유통에 받을 영향을 정확히 파악 못 했다"고 밝힌 뒤 "좀 더 연구하겠다"고 약속했다. CE 부문장인 김현석 사장은 "사태 초기에 중국에서 일부 부품 공급에 지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영향이 없다"고 안심시켰다.

고민 끝에 현장을 찾았지만 대응책을 자세히 듣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분위기가 애매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궁금해서 왔다"고 밝힌 한 40대 주주는 "관련 질문에 대한 대답이 형식적이었다"고 아쉬워했다.

파운드리 사업 전략과 제품 이미지 발전 방법 등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김 부회장과 고 사장 등은 해외 고객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고, 제품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정 어린 질타도 이어졌다. 한 주주는 아이폰을 바라는 고교생 아들에게 갤럭시를 사주자 이어폰이라도 애플 제품을 가지겠다며 자녀가 아르바이트해 에어팟을 구매한 사례를 들며 "애플처럼 세상을 바꾼다는 식의 기업 정체성이 있느냐"며 "주위에 있는 전직 삼성 직원은 친정에 좋은 소릴 하지 않는데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고 사장은 "12년 전 스마트폰을 처음 내놓은 애플이 젊은층 감성을 자극하고 매력을 느끼게 하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다"면서도 "삼성도 고객감동에 초점을 맞춘 지 오래다. 20대에선 갤럭시 호응이 올라갔다"고 답했다. 임직원이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부족한 점을 돌아보겠다고도 했다.
 

18일 수원컨벤션센터에 마련된 삼성전자 주주총회장 입구. 진입로 17개가 마련됐지만 찾는 사람이 적어 한산했다. [사진=이범종 기자]

◆"첫 주총 오려고"···전자투표 대신 현장행

이날 주주총회는 이례적으로 서울 서초사옥 밖에서 진행됐다. 기존 400~500석 규모였던 주총장을 지난해 900여석으로 늘렸음에도 자리가 북적였던 영향이다. 작년은 액면분할 후 첫 주총이었다. 회사는 1400여석을 마련했지만, 이날 모인 주주는 400여명에 불과했다. 참석자들은 사측 안내에 따라 앞뒤로 두 칸씩 띄워 앉았다.

삼성전자는 방역을 위해 출입구마다 손세정제를 비치하고 체온을 측정했다. 의료진 10여명에 앰뷸런스 4대도 마련했다. 주총이 끝날 때까지 발열 등 코로나19 의심증상을 보인 참석자는 없었다.

삼성전자는 이날부터 전자투표도 도입했다. 이 때문인지 현장에 나타난 주주들은 전자투표 사실을 몰랐거나 생애 첫 주총에 참여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주주가 된 지 2년 만에 처음 주총에 참석한 김상운(68)씨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회사 주주가 된다는 건 영광이고 자랑"이라며 "삼성전자 방역을 믿고 왔다. 든든하다"고 말했다.
0개의 댓글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