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입이 금지된 장비 사용을 둘러싼 마찰 장면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이 사건은 곧 ‘SEAbling’이라는 온라인 연대로 번졌다. 인도네시아 유력 일간지 The Jakarta Post 등 현지 언론까지 관련 사안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사태는 단순한 팬덤 갈등을 넘어 국가 이미지의 문제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현상을 바라보는 데 필요한 태도는 감정이 아니라 원칙이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고 다른 하나는 왜곡과 혐오에 대한 이성적이면서도 단호한 대응이다.
한류는 지난 20여 년간 눈부신 성취를 이뤘다. 음악과 드라마, 영화, 뷰티,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는 세계적 주류로 자리 잡았고 동남아시아는 그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성공이 길어질수록 경계해야 할 것도 분명하다. 바로 ‘문화적 우월감’이라는 독버섯이다. 일부 누리꾼들이 현지의 비판에 인종차별적 언사로 맞서고 경제적 격차를 들먹이며 상대를 조롱하는 모습은 방어가 아니라 오만에 가깝다.
문화는 상품이기 이전에 관계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 전파는 일방통행식 소비에 불과하다. 우리가 동남아시아를 단지 ‘시장’으로만 인식한다면 그들이 한국을 향해 품어온 애정은 언제든 실망으로 돌아설 수 있다. 품격 없는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환호는 일시적이지만 존중은 관계를 지속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일탈이 곧바로 국가 전체에 대한 혐오로 비화하는 현상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일부 팬의 몰상식한 행동을 한국인 전체의 ‘국민성’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비약이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자극이 곧 확산의 연료가 된다. 알고리즘은 분노를 증폭시키고 혐오는 공감 버튼을 타고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이 과정에서 사실관계는 쉽게 왜곡되거나 생략된다.
따라서 대응 역시 체계적이어야 한다. 공연 주최 측과 관련 기업은 사건 경위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문제가 된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과를 내놓아야 한다. 동시에 그것이 한국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아님을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침묵은 무책임으로 읽히고 모호한 태도는 오해를 키운다.
민관의 소통 강화도 중요하다. 외교 당국과 문화 관련 기관은 현지 언론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한류는 더 이상 단순한 콘텐츠 산업이 아니다. 국가의 신뢰와 직결된 외교 자산이다. 관리된 문화 교류는 신뢰를 쌓지만 방치된 갈등은 외교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아울러 상호 호혜적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의 음악과 음식,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보일 때 교류는 비로소 쌍방향이 된다. 동남아시아의 젊은 세대가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만큼 우리 역시 그들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류는 사랑을 강요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이다.
국가 이미지는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찰나면 충분하다. 클릭 한 번, 자극적인 게시물 하나가 수십 년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반한 정서를 ‘일시적 소동’으로 치부하거나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할 선택이다.
우리는 이미 세계와 촘촘히 연결된 시대를 살고 있다. 진정한 강국은 비난에 욕설로 응수하지 않는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왜곡이 있다면 논리로 바로잡는다. 분노가 아니라 절제가, 우월감이 아니라 존중이 관계를 지킨다.
한류의 진정한 완성은 더 큰 무대나 더 높은 매출에 있지 않다. 그것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환호는 열기를 남기지만 존중은 신뢰를 남긴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품격과 절제로 연결의 힘을 지키는 것 그것이 한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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