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계획 과정에서 두산이 금감원 기준에 맞춰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분할된 신설 투자 회사의 수익가치를 산정하는 데 소홀했고, 금감원은 '금감원장이 정한다'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두산에 정정만 요구해 혼란을 야기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이 ‘주주들의 투자 판단을 위해 두산 측이 (기업공시서식에) 기재해야 하는 내용의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답변서에 담긴 내용이다. 금감원은 “자본시장법령 등에 따라 작성하는 공시 서류의 작성 방법, 기재 내용 및 범위에 관해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에서 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16일 이코노믹데일리는 해당 답변서를 분석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향후 전망을 전문가에게 물었다.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김광중 변호사는 “증권신고서 등이 포함된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은 금감원이 만들고 금융위원회가 승인한다. 기업이 제출한 증권신고서의 정정 신고를 요구할 권한이 금감원에 위임돼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기업공시서식의 작성기준은 기업이 공시 자료를 작성할 때 따르는 규정이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의 신뢰성 강화가 목적이다.
금감원은 두산그룹이 지난 7월 두산로보틱스의 분할합병을 공시하고 보름 뒤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정정된 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는 부분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 투자회사의 가치 산정 방식이다. 두산로보틱스가 증권신고서에 신설 투자회사의 수익가치를 현재 주식가치(기준시가)로 계산하면서 기업 평가액을 끌어내렸다. 신설 투자회사 등 비상장법인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5에 따라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대1.5 비율로 정해야 한다.
금감원은 답변서에 “분할신설부문 수익가치는 현금흐름할인모형, 배당할인모형 등 미래 수익이 발생하는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모형을 적용해 기존 기준시가를 적용한 평가방법과 비교하도록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6조에 따른 조치다.
그러나 투자업계 관계자는 “두산로보틱스가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기업 가치를 산정했다"며 "미래 수익을 반영하지 않고 기업 가치를 일부러 낮춘 정황이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인데도 과거 대기업들이 계열사 간 합병할 때 주로 기준시가로 가치를 산정해 왔다는 이유로 그대로 따랐다"고 말했다.
금감원 조치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금감원이 요청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상대가치' 기재를 두고는 두산과 금감원 모두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산 측은 상대가치를 분석하고도 3개 이상의 유사회사가 존재하지 않아 가치를 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는 전 세계 유사업종 비교 표를 제시했다.
윤태준 액트 연구소장은 “상대가치는 7조1000억원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가”라며 “현재는 두산밥캣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대가로 두산로보틱스가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에 지급하는 주식가치는 약 1조6000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역시 정정 요구엔 아예 ‘상대가치’를 기재하라는 내용이 빠져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증권신고서에 관한 평가가 달라져 시장 혼란을 야기한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합병 관련 법과 규정, 세칙에는 '필요한 사항은 금감원장이 정한다'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금감원장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같은 지적에 금감원 측은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7조에 따라 상대가치를 산출할 수 없는 경우 상대가치를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만 내놨다.
김현정 의원은 17일 국회에서 금융감독원에 대해 국장감사를 진행하는 자리에서 두산 김민철 재무담당 사장을 증인으로 불러 이 같은 문제를 질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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