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른바 '리밸런싱(사업 재조정)' 작업은 200개가 넘는 계열사를 합치거나 정리하고 일부 투자된 자금을 거둬들이는 내용이 골자다. 재계에선 SK그룹 계열사 내지는 사업 가운데 다음 구조조정 타깃이 무엇일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가장 먼저 얘기가 나온 곳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였다. 정유·배터리·도시가스 등 에너지 사업을 하는 두 회사를 합쳐 자산 100조원이 넘는 초대형 중간지주회사를 만든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이는 오는 28~29일 SK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모이는 경영전략회의에서 다뤄질 의제 중 하나로 거론됐다.
SK이노베이션은 해상 소식이 전해진 지난 20일 공시를 통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병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에너지 부문이 첫 번째 대상으로 언급된 배경의 중심에는 SK온이 있다. SK온은 SK이노베이션이 지분 89.5%를 보유한 배터리 자회사다. 이 회사는 지난해 5818억원, 올해는 1분기에만 3315억원 적자를 냈다.
SK온 매출은 2022년 7조62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2조9000억원으로 급격히 성장했는데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문제였다. 오는 2026년까지 더 쏟아부어야 하는 돈만 15조2000억원이다.
여기에 지난해 상반기까지 배터리 완제품의 수율(정상 제품의 비율)은 80% 정도에 그치며 수익성 개선의 발목을 잡았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 조지아 공장 기준 수율이 90% 이상으로 올라왔지만 배터리 수요를 책임지는 전기차 시장이 불황에 빠졌다.
들어가야 할 돈은 많은데 자금을 수혈할 창구가 마땅치 않다는 게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설이 나온 원인이다.
그간 SK온은 특수목적채권 발행이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을 통해 필요한 돈을 조달됐지만 이런 방법은 한계에 다다랐다. SK이노베이션의 부채가 늘어나며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말 이 회사의 자기자본 대비 부채 비율은 176%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3월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내리기도 했다.
리밸런싱의 두 번째 타깃은 SK그룹이 보유한 베트남 마산그룹 지분이 됐다. 마산그룹은 베트남 재계 2위 유통 기업으로 SK그룹은 최근 이 회사 지분 9%를 처분하는 풋옵션(주식 매도 권리)을 행사했다. SK그룹이 이를 통해 확보할 것으로 추산되는 금액은 1조원 규모다.
지난 20일에는 SK그룹이 자금 조달을 위해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양측 모두 해당 내용이 나오고 하루 만인 21일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SK그룹 안팎에서는 알짜 사업 매각을 통한 자금 마련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부채 비율이 과도하게 높거나 근래에 신용등급이 떨어진 회사, 적자가 고착화된 사업이 (리밸런싱의) 기본적인 대상이겠지만 당장 필요한 돈을 조달하려면 예외는 극히 일부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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