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1월 28일 SK그룹 전신인 선경그룹은 672억원에 유공 주식을 인수했다. 그리고 섬유재벌 선경그룹은 재계 10위에서 5위 그룹으로 올라섰다.
당시 동자부 차관이던 최동규 전 장관은 20여년이 지난 1999년 산업자원부에서 발간한 ‘역대 상공·동자부장관 에세이집(표지)'에서 유공 민영화 뒷이야기를 전하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했다.
199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함께 골프를 치던 최 전 장관에게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도록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야, 나도 잘 몰랐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에세이집에 실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 항소심 재판에서 ‘SK그룹 급성장에는 최 회장의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광이 있었다’는 내용에 새로운 사실이 추가된 셈이다. 지난달 30일 항소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1조3808억원 재산 분할이 선고된 근거로 이른바 ‘6공 사돈 기업’의 특혜로 SK그룹이 성장한 점에 주목했다. 특혜의 핵심으로 꼽은 건 노태우정부 시절 이뤄진 증권업 진출과 한국이동통신 인수였다.
19일 이코노믹데일리 취재에 따르면 에세이집엔 ‘6공화국’ 출범 이전부터 SK그룹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한석유공사 민영화 과정에 노 전 대통령 이름이 등장했다. SK에 노 전 대통령의 특혜가 개입했음을 암시하는 내용도 곳곳에 담겼다.
최 전 장관은 "인수할 기업을 미리 선정하고 그 기업이 아니면 인수할 수 없도록 조건을 각본에 맞게 정하는 듯 보였다"면서 "(유공) 민영화 정책에 당시 울산정유 사장, 동자부 장관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 문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 모두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유공 인수 작업은 무리 없이 진행됐다. 선경그룹은 대한석유지주가 갖고 있는 유공 지분의 50%를 차지하게 됐고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1980년 12월 박봉환 동자부 장관은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선경이 원유의 장기 확보 능력과 자금 조달 능력, 산유국 투자 유치 능력, 경영 관리 능력, 산유국과의 교섭 능력과 실적 등 기준에 가장 합당했기 때문"이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1988년 최 회장과 노 관장이 결혼하기 전의 일이다.
시간이 흘러 국회에서도 선경그룹이 유공을 인수한 경위를 따져 묻기 시작했다.
1985년 10월 동자부 국정감사에서 김봉호 신민당 의원이 "선경의 비정상적인 사세 확장이 계속되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라며 동자부 장관에 선경의 유공 인수와 관련한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동자부 장관은 "80년 당시 외자 조달 능력이 있어야 했고 제2차 석유 파동으로 인해 80년 2분기부터는 전량 (원유) 공급이 중단됨에 따라 원유 확보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적 요인이 됐다"며 선경을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질의에 답한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의 개입 가능성을 지적한 최 전 장관이었다.
이후 유공은 선경그룹이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데 힘이 됐다. 선경그룹이 이통사업 진출을 처음 결심한 1992년 입찰에도 유공의 도움이 컸다. 당시 선경그룹은 계열사인 유공을 포함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 한국전력, 대한텔레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나서며 경쟁사보다 우위를 점했다.
이 같은 특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최 회장은 '6공 특혜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7일 열린 이혼 소송 관련 설명회에서 "6공 후광으로 SK 역사가 전부 부정당하고, 후광으로 사업을 키웠다는 판결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SK그룹이 비자금이나 누구의 후광으로 커 왔다고 생각하는 걸 받아들이기엔 역사적 사실도 아니다“라며 상고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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