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SK의 석연찮은 이동통신 진출…최태원·노소영 이혼 쟁점 됐다

성상영 기자 2024-06-18 07:00:00
92년 대선 정국 속 '제2이통' 사업자 선정 당시 선경, 사업권 따낸지 7일 만에 반납 특혜 시비에 선거 악재 우려한 YS '반발' 정권 바뀌고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마무리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을 밝히는 자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을 계기로 과거 SK 전신인 선경그룹의 사업이 재조명되고 있다.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본보 6월 13일자 B1면) 배경, 이동통신 사업 진출 경위를 두고 6공화국 혜택을 받았다는 주장들 때문이다.

특히 선경은 6공화국인 노태우정부 시절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냈다가 반납한 뒤 다음 정부인 김영삼정부에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면서 불거진 의혹을 해소되지 못한 채 30년 세월을 보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과 관련해 설명하는 자리를 갖고 6공 특혜를 입었다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상고를 통해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에서 "(선경의 한국이동통신 인수 등에) 노태우의 유·무형적 기여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언급하면서 선경의 한국이동통신 인수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본 데 대한 반박이었다.

선경이 이동통신 산업 진출을 시도한 건 국내 정보통신 산업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미국이 한국에 통신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박하자 1989년 11월 정보통신발전협의회가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체신부는 민간 협의체의 의견을 검토한 뒤 1990년 7월 통신 경쟁 체제 도입을 위한 통신 사업 구조조정 방침을 확정했다.

이때부터 제2이동통신 사업은 다가올 2000년대 최고 알짜 사업이자 6공화국 최대 이권 사업으로 불리며 대기업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특혜 논란은 정부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 과정에서 비롯됐다. 1991년 7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전기통신기본법 등 개정된 법령은 통신기기 제조업체의 이동통신 회사 보유 지분율을 10%까지만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통신 설비 등을 만들던 삼성, 현대, 럭키금성(현 LG), 대우 등 4대 그룹은 사업에 참여해도 보유 지분이 제한돼 경영권을 가질 수 없게 됐다.

덕분에 체신부가 1992년 4월 제2이동통신 사업 허가 신청 공고를 냈을 당시 재계 5위 선경은 계열사인 유공과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 한국전력, 대한텔레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입찰에 참여하면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1차 심사에서 선경은 1만점 만점에 총 8127점을 얻어 2위 코오롱그룹을 344점 차이로 가볍게 눌렀고 그해 8월 모두의 예상대로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낙점됐다.

체신부는 "선경의 장래 계획을 중시했고 심사위원들이 항목마다 채점 사유를 기재해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했고 송언종 당시 체신부 장관도 기자들에게 "대학 입시에 총장 아들이 응시했을 때 실력이 뛰어난데도 불합격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특혜 논란이 확산되던 중 선경이 돌연 사업권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갑작스런 발표의 배경에 노태우정부의 유력 대선 주자였던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선경이 통신 사업자로 선정된 직후 언론에선 "'(김영삼 대표가) 노태우 대통령 사돈 기업인 선경이 이통 사업권을 가져가 특혜 시비가 일었고 대선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6공 정경유착'을 비판하던 야당보다 더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선경이 사업자 선정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하자 다음날인 1992년 8월 28일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당 총재에 선출됐다. 언론은 이를 두고 현직 대통령인 노태우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인 김영삼 민자당 총재 간 '밀약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김영삼정부 1년차인 1993년 12월 체신부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권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에 일임하기로 하고 국유 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하기로 했다. 한국통신이 보유한 한국이동통신 주식 중 전체의 44%에 해당하는 주식을 경쟁 입찰 방식으로 매각한다는 내용이었다.

1994년 1월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지분 인수 의사를 밝힌 뒤 전체 발행 주식 23%를 매입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코노믹데일리는 17일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국회 회의록과 언론 보도를 전수 분석해 SK그룹의 성장 발판이 된 한국이동통신 인수 과정을 되짚어 봤다. 

국회는 태평양증권과 달리 선경의 한국이동통신 인수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경재 민주당 의원이 1994년 2월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왜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에게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게 해 주었느냐"며 공세를 펼친 게 전부였다. 이에 윤동윤 체신부 장관이 "정당한 절차에 의거 공개적으로 시행한 입찰의 결과"라고 답했지만 더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 이후에도 국회에서 언급되기는 했지만, 여론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밀약설을 두고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영삼정부 들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대신 노태우정부에서 실패한 제2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다시 추진했을 것"이라며 "오히려 6공 압력으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 취득을 포기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