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증시에 초점 맞춘 '기업 밸류업', 기업들 불편한 속내

성상영 기자 2024-02-20 10:13:12
정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본격화 의도와 달리 '주가 띄우기' 그칠까 우려 "경영권 위협 길 터준 규제부터 풀어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정부가 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소매를 걷자 오는 26일 발표될 '기업 밸류업(가치 상승) 프로그램'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금융 부문에서 나오는 여러 반응과는 별개로 기업들은 마냥 반갑지 않다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26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안 발표를 앞두고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등 대기업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사회 운영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주주 환원을 강화해 중장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정책이다. 주가에 기업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단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등 금융당국 주도로 추진되는 모양새다. 표현 그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실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내용을 언급한 이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주식에 투자 심리가 향하기도 했다. PBR은 주가를 주식 1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을 말한다. 쉽게 말해 주가에 자산 가치가 얼마나 반영돼 있는지를 나타낸다. PBR이 낮으면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보는데, 최근 '저PBR주'의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금융시장의 반응과 달리 재계에서는 "단순 주가 띄우기로 끝나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주식 가치 상승이 자칫 기업 경영권을 겨냥해 단기 차익을 실현하려는 행동주의 펀드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다.

이와 관련해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의도가 주식 사라는 건 아니겠지만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업 밸류업을 등에 업고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며 "이들이 주가만 띄우고 엑시트(이탈)하면 결국 개미들만 손해를 뒤집어쓰지 않겠냐"고 말했다.

증시에 집중된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제도를 종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내부거래) 규제나 대주주 의결권 제한(일명 '3%룰') 규정,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이 거론된다. 우리나라는 계열사 간 거래를 사익 편취 일종으로 보고 매출 비중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하는데, 사업 시너지나 비용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오랜 논란이 돼 왔다. 대주주 의결권 제한이나 감사위원 분리 선임 역시 투기적 성향이 짙은 사모펀드들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렵게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면서 "특히 정부가 수치를 가지고 기업을 줄 세우고, 행동주의 펀드가 이를 명분으로 삼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의견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 부총리는 간담회 당시 "기업 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에 대한 정책 과제나 기본 방향 등을 (밸류업 프로그램에) 담을 수 있을지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