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박경아의 잼버리 잇슈]한숨 돌린 K팝 공연…이제부턴 정산의 시간

박경아 논설위원 2023-08-12 13:19:56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에서 대원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사진=박경아
[이코노믹데일리] TV를 보며 이렇게 가슴을 졸인 건 처음이다. 11일 오후 5시 30분부터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장소를 옮겨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폐영식과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공연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관제 행사니 국가동원령이니 뒷말도 많았지만 K팝 공연은 그간 새만금 잼버리 부실 운영으로 구겨질 대로 구겨진 대한민국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망신살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고자 하는 승부수였기 때문이다.

세계 150여개국 4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지에서 지난 1일 개막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는 화장실, 샤워실 등 시설 미비에 보건·위생 문제까지 제기돼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화장실 청소에까지 나섰으나 결국 미국, 영국, 싱가포르 스카우트가 퇴영을 결정하며 개막 후 며칠만에 망신살 뻗친 국제 행사로 전락했다. 

날씨마저 돕지 않아 폭염에 이어 6호 태풍 카눈이 관측 사상 최초로 한반도를 관통하는 바람에 정부가 3만명이 넘는 스카우트 대원들을 1000대 넘는 버스에 실어 전국 8개 광역단체에서 마련한 숙소 128곳에 분산 배치했다가 폐영식을 위해 한 자리에 다시 모인 것이었다.

태풍 카눈이 지난 바로 다음날 열린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K팝 공연은 스카우트들이 새만금 야영을 종료한 뒤 사흘만에 급조된 공연이었다. 태풍이 지나는 와중에 무대를 설치하고 빗방물이 여전한 무대에서 K팝 스타들은 리허설조차 없이 무대에 섰다. 비가 얼마나 올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들의 공연을 지켜봤는데, 무대마다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K팝 멤버들이 이렇게 미더워 보인 적도 처음이다. 중간중간 무대 앞쪽으로 걸어 나가 “즐거우신가요?” “같이 떼창 해볼까요?”등을 영어와 우리말로 묻고 환호를 이끌어내는 모습에서는 여유까지 느껴졌다. 

관람석의 각국 스카우트들 가운데에는 열렬한 K팬들도 있었고 K팝이 낯설어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즐기고 환호했다. K팝 공연 전 열린 잼버리 폐영식에서 아흐메드 알헨다위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은 이번 잼버리가 역대 어떤 잼버리보다 힘들고 지구온난화 영향을 받아 처음으로 “여행하는 잼버리”가 됐지만 그 경험을 성찰하는 것은 각자 스카우트의 몫이라고 이번 잼버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듯해 다행이었다.

그동안 IMF구제금융 당시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온 경험이 만든 우스갯소리가 ‘우리나라는 국난극복이 취미이자 특기’란 말이다. 이번 '국난'은 하루아침에 우리나라가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진 듯한 자괴감과 다른 나라 부모들이 난리를 치는 국제적 망신이 곁들여졌다는 점에서 여느 국난과 달랐다. 게다가 폭염과 태풍이란 기상이변까지 덮쳤단 점에서 운도 나빴다.

당초 계획과 달리 나무 한 그루 없는 야영장에 배수조차 안 되고 화상벌레가 난무해 스카우트 부모들로부터 준비 부족에 대한 항의를 받고 태풍 때문에 전국 8도에 배치하는 데에도 크고 작은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3만명이 넘는 스카우트들을 피신시키고 나름의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에는 전국 8도에서 많은 이들이 선의로 거들었다. 새만금 잼버리를 망친 누군가 때문에 많은 이들이 뒷수습에 생고생을 했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지난 9일(현지시간) ‘정치적 스캔들로 번진 한국 스카우드 대회’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내 실정을 통렬하게 꼬집었다. 기사는 “잼버리 대회를 준비한 관계자들의 비용에 의문이 들고 있다”며 “이번 대회의 조직과 운영을 위해 1171억원의 예산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와 전북도의 외유성 해외출장에 대해서도 언급한 뒤 “언론이 이미 '국가적 망신'으로 묘사하는 잼버리가 폭염과 태풍을 겪고 나서 정치적 태풍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는 눈은 외국 언론도 같다. 누군가의 축제는 끝났다. 정산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