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담배 한 갑이 든 소풍가방이 참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그 당시만 해도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얼마나 어려운 존재였던지, 먼저 가서 말을 건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언제 담배를 전해드려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담임 선생님이 잠시 한가해 보인 틈을 타 "울 아부지께서 선생님께 전해 달라 하셨어요"라는 말을 내뱉다시피 하며 두 손으로 담배를 건네드리고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떴다. 얼마나 쑥스럽고 가슴이 콩닥거리든지.
나중에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집 가정 방문을 하셨고, 아버지와 막걸리 한 주전자를 같이 드시며 함께 편하게 얘기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두 분이 이전부터 알던 사이란 걸 뒤늦게야 눈치챌 수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 남자 교사들끼리니 전근다니며 한 번쯤은 같은 학교에 근무할 수도 있었으리라. 아마 소풍날 그 담배도 아이들 야외에 풀어놓은 사이 담배 한 대의 힐링을 느껴보시라 주신 동료 교사에 대한 선물이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교권이 화제가 될 때마다 아버지가 딸 담임 선생님께 건넸던 소박한 담배 한 갑 선물이 생각난다. 그걸 전해드리던 내게 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하늘 같은 존재같이 느껴졌던지, 그래서 아버지가 주신 담배 한 갑이 얼마나 큰 무게로 내 소풍가방에 담겼던지가.
요즘 교권이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은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자란 중·고등학교보다 오히려 초등학교란 점에 시선이 간다. 오히려 중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생활기록부가 중요해지고 문제가 생기면 기록이 남기 때문에 특정 교사에 집중되는 교권 문제는 초등학교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고등학교 교권이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자라서 아이 둘을 둔 학부모이기도 했다. 학교나 수업에 따라 어느 정도로 아이들이 교사를 무시하는지 공립고등학교에 다니던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이어플러그를 귀에 달고 살아야 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학교 있는 동안 전화 통화를 하게 됐는데, 시장통보다도 시끄러워서 쉬는 시간이냐 물었더니 수업시간이라고 하는 대답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이 떠들고 내 아들은 내게 전화까지 할 정도가 수업시간이라니. 초등학교 교사 부친을 둔 내게도 그 수업 담당 선생님이 느꼈을 비애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게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실제 모습이었다.
내 부친이 초등학교 교사를 하실 때만 해도 초등학교 교사 상당수가 남자 교사였다. 초등학교 시절 내 담임 선생님이 여선생님이었던 때는 1학년, 5학년 때 두 번에 불과했다. 지금은 내 어린 시절과 교사 성비가 완전 반대로 바뀌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18~2022학년도 초중고교과교사 성별 현황'에 따르면 전국 초등 교사는 15만1720명이었는데 이중 여교사는 11만6788명으로 전체의 77.0%였다. 전체 초등학교 선생님 10명 중 8명이 여자 선생님인 셈이다. 중학교 여교사 비율은 76.4%, 고교 여교사 비율은 64.2%로 학교급이 오를수록 여교사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단순히 여교사가 다수여서 문제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아이에게 뭐를 해줘야 좋을지" 갈팡질팡하던 초보 학부모부터 시작해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학부모의 이 같은 시행착오가 가장 많은 시기가 첫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이란 점이고, 특히 외동이 초보 학부모들을 감당해야 이들이 여성이 10명에 8명인 초등학교 교사들이란 점이다. 지금까지 이뤄진 초등학교 교사 대상 갑질 가운데 상대가 나이 많은 남자 교사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 전혀 없다고는 아무도 말 못 할 것이다.
지난 27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초등학교 교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교권침해 사례 9,163건 가운데 학부모 갑질 비중은 716건으로 7.8%를 차지했고 특히 초등학교는 884건 중 33.7%인 298건이 학부모 갑질로 나타나 중·고교에 비해 무려 7배가 높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크게 사회문제 되지 않은 드러난 않은 학부모 갑질이 유치원이나 보육원 교사들에 대한 갑질이다. 이들은 초등학교 교사들보다 전문성이 약하다 보니 갑질을 당하고 하소연할 곳조차 여의찮은 실정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첫 아이가 있고, 처음으로 유치원에,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치이거나 차별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불안을 갑질로 풀진 않는다. 극단적 선택을 한 서이초 교사는 '연필사건' 사건이 끝나고도 학부모 전화에 시달려 동료 교사로부터 전화번호를 바꾸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갑질의 본질은 상대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오만한 마음이다. 내 자식의 인생 중 일 년을 함께 걸어갈 선생님 가운데 어떤 선생님이 하찮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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