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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업 접으란 건가요?" 공공기관 나와 가업 이은 2세의 호소

고은서 인턴기자 2023-01-19 11:16:32
'中企 2세' 여상훈 ㈜빅드림 경영혁신실장 공공기관에 실망…가업 기울자 승계 결심 30억 가치 회사 물려받는데 증여세만 8억 "위태로운 승계 포기하고 창업 택했을 것"

여상훈(38) ㈜빅드림 경영혁신실장[사진=성상영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지금 제도로는 가업(家業)을 물려받을 유인을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30억 가치를 가진 회사를 물려받는데 증여세가 8억원이란 말을 듣고 사업을 접으라는 건가 싶었습니다."

중소기업 2세 경영자인 여상훈(38) ㈜빅드림 경영혁신실장은 가업 승계 제도에 관한 생각을 묻자 깊은 한숨부터 쉬었다.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공공기관을 그만두고 아버지가 운영해 온 회사를 물려받기로 결심했지만 승계 제도의 장벽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약탈에 가까운 증여·상속세는 '100년 기업' 탄생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아무리 부자라도 세금을 내고 나면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증여·상속세는 살인적이다. 과세표준 30억원을 넘어서면 무려 50%를 증여세로 내야 한다. 가업 승계 특례를 받더라도 세율은 최고 20%까지만 낮아진다.

여상훈 실장은 지난 1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빅드림 연구소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증여세가 과도하게 부과되는 것을 알았다면 굳이 무너져가는 사업을 물려받지 않고 새로 사업체를 등록해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업 위기' 볼 수만 없어 승계 결심, 세금 폭탄에 '흔들'

여 실장이 물려받을 빅드림은 문구 제조·유통 회사다. 그가 사업에 참여한 때는 2015년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에서 인사 등 업무를 하며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여 실장에게 날로 어려워져 가는 아버지 회사가 마음에 걸렸다.

여 실장은 20대 초부터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지는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문구 제품을 공급하던 월마트가 2006년 철수를 결정하자 판로가 사라졌다. 여 실장은 "공공기관 특성상 (일에 대한) 욕심을 내기엔 벽이 있었다"며 "가업이 기우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막상 아버지 회사에 들어오니 막막함이 앞섰다. 행정 업무만 해오던 여 실장에게 장사는 낯설기만 했다. 오프라인 매장에 직접 배달하는 일부터 시작해 수많은 재고를 어떻게 판매할 수 있을지까지 고민했다. 빅드림은 G마켓, 11번가, 쿠팡 등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판매 채널을 열고 기업 간 거래(B2B)에서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로 영역을 넓혔다.

착실하게 사업 확장에 집중해도 시간이 늘 부족한데 세금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여 실장은 "당시 평가된 회사 가치는 30억원에서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내야 할 증여세만 8억원 정도였다"고 했다. 직장 생활로 모은 돈을 모조리 회사 정상화에 쏟아부은 터라 그에겐 돈은커녕 담보 대출을 받을 집도 없었다.

증여 대신 상속을 택하기로 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연 매출 4000억원 미만 중견·중소기업 경영 승계를 지원하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었지만 장벽은 높았다. 증여는 물려주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 이뤄지고 상속은 사후에 진행된다.

가업상속공제는 피상속인(상속을 해주는 사람)이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을 상속인(상속을 받는 사람)에게 물려주면 과세표준(상속가액)에서 최대 500억원을 빼주는 제도다.

문제는 '업종 유지' 조건이었다. 여 실장은 아버지 때의 문구 유통업은 이미 레드오션(포화 시장)이 돼버렸다고 판단해 업종을 제조업으로 변경했다. 그는 "가업상속공제를 알아봤더니 업종이 바뀌어서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여 실장은 "제도 자체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막혀 있어 황당했다"며 "지금 제도에서는 가업을 물려받을 유인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구태여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사재를 털어가며 사업할 이유가 없다는 푸념이 뒤이었다.
 

여상훈(38) ㈜빅드림 경영혁신실장[사진=성상영 기자]

◆규제 어려움 딛고 교구 브랜드 '티처스' 출시하며 B2G 진출

여 실장은 가혹한 승계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신만의 사업 비전을 확고히 세운 상태다. 경영 2세가 이끄는 빅드림은 미래 세대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여 실장은 "빅드림이 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로 인식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 배경에는 문구 유통업이 봉착한 한계와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신념, 정부 조달시장 진출을 통한 수익 안정화 등이 존재한다. 여 실장은 "유통업을 하다보니 남의 브랜드에 의존하면 경쟁은 치열한 데 반해 부가가치는 적다고 느껴졌다"면서 "이에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빅드림은 2020년 융합인재(STEAM·스팀)에 쓰일 교구 사업에 착수하고 새 브랜드인 '티처스(Teachers)'를 출시했다. 스팀 교육은 어느 한 분야 치우치지 않고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인문·예술(Arts) △수학(Mathematics)을 골고루 잘하게 만드는 교육이다.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융합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티처스는 자체 연구소 설립하고 지난해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 중이다. 현재 자율주행 자동차 학습 키트를 개발해 학급 학교에 납품을 추진 중이다. 여 실장은 "빅드림을 정보기술(IT)과 교육을 결합한 에듀테크(Edu Tech)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