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SK이노베이션의 화학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이 최근 레고랜드·흥국생명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된 가운데 수천억원을 차입하는 데 성공해 눈길을 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중 하나인 친환경을 앞세워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사업성을 인정받았다는 분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SK지오센트릭은 프랑스 BNP파리바은행과 크레디 아그리콜 CIB, 중국농업은행, 중국은행, 일본 MUFG은행 등 5개 글로벌 은행으로부터 4750억원 규모 '지속가능연계차입(SLL)' 조달에 성공했다.
SK지오센트릭과 5개 글로벌 은행으로 구성된 대주단은 전날(15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3년 만기 SLL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SLL은 국제 인증기관인 DNV로부터 검증받아 차입까지 성공한 국내 첫 사례다. DNV는 SK지오센트릭이 설정한 목표에 대해 "매우 도전적인 계획이며 목표 수준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해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SK지오센트릭은 친환경 경영 목표를 각 은행에 제출했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지구를 중심에 둔 친환경 혁신이라는 방향을 담은 파이낸셜 스토리와 ESG 경영에 대한 진정성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인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SLL은 ESG 경영과 연계한 자본 조달 방법 중 하나다. 기업의 ESG 경영 목표를 면밀히 검토한 뒤 금융기관이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기업과 은행을 중심으로 SLL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자금을 차입한 기업이 ESG 경영 목표를 달성하면 금리 우대 혜택이 추가로 주어진다.
SLL을 포함한 세계 ESG 금융 규모는 2018년 2385억 달러(약 316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5706억 달러(2083조9000억원)로 커졌다. 생활·산업용품을 생산하는 독일 헨켈 등 세계 여러 기업이 SLL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비슷한 자금 조달 방식으로는 그린본드(녹색채권)이 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발행되는 특수목적채권 중 하나인 그린본드는 친환경 관련 사업에만 자금을 사용할 수 있는 채권이다. 그린본드는 자금의 사용처만 들여다 보지만 SLL은 자금이 사용되는 사업 계획과 달성률까지 따진다.
SK지오센트릭은 플라스틱 재활용 수준을 2025년까지 90만톤(t)으로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같은 해까지 24.9% 감축(2019년 대비)하는 두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SLL로 조달한 자금은 오는 2025년 SK이노베이션이 세계 최초로 구축하는 울산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 단지(리사이클 클러스터) 등 ESG 관련 사업에 쓰인다. 울산 리사이클 클러스터는 21만5000㎡(약 6만5000평) 부지에 지어져 연간 25만t에 이르는 폐플라스틱을 처리한다.
SK지오센트릭은 시중 회사채 금리보다 연 2~3%포인트(P) 정도 낮게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대주단은 목표 달성 수준을 검증하고 이에 따라 금리도 조정할 예정이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친환경 사업에 대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국내 최초로 SLL 방식으로 진행된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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