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위기·가치·동맹...총수들의 스토리텔링

이범종 기자 2020-06-26 02:03:00
이재용 수사심의위 앞두고 의혹 해명 진땀 최태원 “기업가치 성장 스토리” 강조 취임 2주년 구광모 현장 경영 적극 알려

최태원 SK 회장이 23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20 확대경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데일리동방] 최태원 SK 회장의 ‘스토리 텔러’ 발언이 6월 재계 움직임을 조명하고 있다. 경영자가 자신만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은 총수들의 말과 발로 실천되고 있다.

최 회장은 23일 경기 이천에서 ‘2020 확대경영회의’를 열고 SK 기업가치를 재무성과와 배당정책을 넘어선 사회적가치, 일하는 문화 등을 포괄하는 토털밸류(Total Value)로 정의했다. 각 사 CEO가 시장·투자자·고객 신뢰를 얻을 자기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야 기업가치가 커진다는 당부도 했다. 경영자가 중장기 목표를 추구하면서 직간접적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며 신뢰를 얻는 스토리 텔러가 되라는 주문이다.

◆행복·성장 우선 관념 뒤엎은 최태원

SK 관계자가 설명한 스토리 종류는 △자본시장 평가 중심인 파이낸셜 스토리 △사회 문제도 해결하는 사회적가치 스토리 △친환경 사업을 접목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스토리다. 자기 경영 환경에 맞는 스토리로 총체적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는 의미다.

SK 기업 이념이 이윤 극대화에서 행복 극대화로 바뀐 시점은 2004년이다. 사회적가치 창출은 SK그룹의 헌법격인 SKMS(선경경영관리체계·Sunkyong Management System)에 2016년 추가됐다. 올해 2월에는 14번째 SKMS 개정으로 함께 추구할 이해관계자 행복을 ‘사회적가치’로 개념화했다. 사회적가치는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위해 창출하는 모든 가치다.

이를 바탕으로 최 회장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사태에도 사회 구성원 소통을 적극 이어왔다. 지난달 SK 스포츠단 선수와 감독, SK바이오사이언스 코로나19 백신 개발 담당자들을 화상 통화로 격려했다. 해외 8개국 주재 구성원과도 화상으로 만나 다독였다.

계열사들은 사회적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해 발표하며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사회적가치 창출 규모가 1조8709억원으로 전년보다 8.3% 늘었다. 반면 환경 공정 부문 성과가 2018년 -950억원에서 지난해 -1045억원으로 줄었다. 이에 친환경 기술 개발과 플라스틱 배출감소, 중고 휴대폰 재활용 등을 지난달 약속했다.

같은 기간 사회적가치 규모가 63% 줄어든 SK하이닉스도 환경 영역 성과가 -7080억원에서 -8177억원으로 줄었다고 밝히고 인공지능(AI) 기반 에너지 절감 솔루션 개발, 저전력 반도체 위주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사회적가치를 약속하고 시행착오와 극복 방법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아 차세대 제품 개발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성장통 스토리 쓰는 이재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6월 스토리는 ‘성장통’이다. 그는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 극복,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목표를 자신의 현장 경영 행보와 계속 연관짓는다. 그는 23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에서 경영진 간담회를 갖고 “경영 환경이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며 “흔들리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자”고 격려했다. 19일 화성 삼성 반도체 연구소에서 “가혹한 위기 상황”을 언급한 점과 같은 맥락이다. 자신을 둘러싼 오너 리스크 극복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26일 자신의 구속 여부를 판단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앞둔 상황에서 “흔들리지 말고” 현장을 찾는 총수의 모습으로 위기 극복 스토리 텔링을 하는 모습이다. 위기 극복형 현장 행보는 지난해 여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인한 현지 출장 때도 있었다. 지난달 6일 대국민 사과에서 4세 승계 포기를 선언하고 18일 중국을 찾아 당국의 플래시 메모리칩 협력 강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장외 방어’ 대책도 빠질 수 없다. 삼성은 24일 ‘2015년 삼성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삼성증권을 통해 주가를 불법 관리했다는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오후 10시께 “사실이 아니다”라며 “검찰 수사심의위 개최를 앞두고 위원들의 객관적 판단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입장을 냈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게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부정거래, 주식회사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9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 이 부회장 경영 승계와 연관이 깊다고 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사진 왼쪽)과 구광모 (주)LG 대표가 22일 충북 청주시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LG 제공]
 

◆혁신의 전당에서 도전 스토리 쓰는 구광모

현장 행보를 잘 알리지 않던 구광모 LG 회장은 29일 취임 2주년을 앞두고 혁신 경영 스토리를 궁서체로 쓰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부회장과의 ‘공장 회동’이 대표 사례다. 구 회장은 22일 정 부회장과 LG화학 오창공장을 둘러보며 장수명·리튬-황·전고체 배터리 기술과 개발 방향성을 이야기했다. LG화학은 현대·기아차에 자동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갖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특허만 1만7000건이 넘는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순수 전기차 23종을 내놓는다. 지난해 세계 전기차 점유율 2.1%에서 2025년 6.6%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LG화학이 현 제품보다 5배 오래가는 장수명 배터리 등을 개발해 이 목표를 함께 달성하게 되면 구 회장의 혁신 스토리가 뒷받침된다.

구 회장 혁신 경영의 중심에는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가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이곳에서 AI와 빅데이터 등 전략을 논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이언스파크만의 과감한 도전 문화를 만들어 LG를 혁신기업으로 이끌라는 당부다.

사이언스 파크 설립과 구 회장 취임 시기는 비슷하다. 사이언스 파크는 2018년 4월에 문 열었고, 구 회장은 같은해 6월에 취임했다. 그가 취임 후 먼저 찾은 현장도 사이언스 파크였다.

그가 신년사에서 강조한 ‘페인 포인트(고객 불만 사항)’도 분야를 가리지 않는 혁신을 예고한다. 구 회장이 연초 제품 디자인을 강조한 뒤 LG 벨벳이 화답하듯 ‘물방울 카메라’ 디자인으로 출시됐다. 특허침해 금지 소송으로 혁신 기술 보유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지키고 있다. LG전자는 베코와 그룬디히 상대로 독일 뮌헨지방법원에 낸 특허 침해 금지소송에서 19일(현지시간) 승소했다. 이번 판결로 양문형 냉장고 독자 기술인 ‘도어 제빙’이 LG 기술이라는 점이 세계시장에 각인됐다. 현재 LG전자가 밝힌 특허 침해 금지소송은 미국에서 TV, 독일에서 세탁기와 LTE 기술 등 전방위로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