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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 급했지만… n번방법, 이제 시행령 숙의할 때

이범종 기자 2020-05-21 20:31:55
법무법인 바른·공익사단법인 정 심포지엄 성범죄물, 사업자 책임 강화로 ‘24시간내 삭제’ 길 열려 사업자 사전 조치 치중시 사인의 사인 검열 위험도 죄형법정주의 위배 우려, 각계 지혜로 극복해야

심영섭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이 21일 오후 서울 바른빌딩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통해서 본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심포지엄 중계 화면 갈무리]

[데일리동방] 죄형법정주의 논란을 안고 통과된 ‘n번방 방지법’ 성공은 각계의 숙의에 달렸다는 전문가 의견이 모였다.

21일 법무법인 바른과 공익사단법인 정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통해서 본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을 공동주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끊이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 원인으로 플랫폼 사업자의 방관과 관련법 미비 등이 거론됐다. 온나라를 공분케 한 n번방 사건 재발 방지법에 대한 평가와 질의도 오갔다.

참석자들은 피해 확산 방지 차원에서 법의 필요성을 십분 공감했다. 심영섭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은 디지털 성범죄 정보의 초기 삭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온라인 범죄 특성상 골든아워를 24시간으로 두고 적극 대응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사업자 손에 달린 ‘24시간 내 삭제’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24시간 상시 공동대응 체계를 마련해놨다. 현재 방통위 디지털 성범죄 심의 소위원회(디성소위)와 여성가족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 경찰청 사이버 안전국이 공조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영상 삭제는 플랫폼 사업자 몫이라는 점에서 법적 강제 조치가 요원했다. 디성소위가 24시간 내 삭제·차단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주말과 휴일에는 손 쓰기 어렵다.

심영섭 위원은 “토·일요일에는 사업자가 근무를 안 해 속수무책”이라며 “이번 n번방 방지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사업자의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피해 확산을 막을 골든아워를 지킬 수 있다는 기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진 수요에 기생하는 채팅앱 업자들의 행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번에 국회에서 입법 된 정보통신망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은 업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시작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선 텔레그램 같은 해외 업자와 국내 업자 간 차별 문제는 차후 해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경찰이 잠입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 지침이 구현되는 시점에 사용자들에게 심리적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관리 부담 문제에 대해서는 “300여개 채팅 앱이 아이들을 유혹하는데 거기서 많은 범죄수익으로 기업이 커 간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21일 오후 서울 바른빌딩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통해서 본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에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심포지엄 중계 화면 갈무리]

◆ “판례 반영시 문제 없다” “각계 논의 필요”

n번방 방지법 중 논란이 된 죄형법정주의 위배에 대한 의견은 다양했다. 기존 판례를 시행령에 적용하면 문제가 없다는 의견과 향후 각계 의견을 모아 보완하자는 조언이 나왔다.

20대 국회는 20일 마지막 본회의에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13개를 통과시켰다.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린 이들 법안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가 불법 촬영물 유통을 막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죄형법정주의를 어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죄형법정주의는 어떤 행위가 범죄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미리 법률로 규정돼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정부는 대통령령에 포함될 각종 조치들이 사적 검열이 아닌 일반에 공개된 경우만을 뜻한다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국회 발의 법안의 입법 취지는 국회 속기록으로 확인해야지 정부 해명에 의존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내에서도 죄형법정주의와 위헌 논란이 있었지만 21대 국회에 개정안을 맡기기로 했다.

참가자들은 시행령에 기댄 이들 조항에 사회적 숙의가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중대하고 급박한 사안을 감안할 때 처음부터 완전무결성을 추구하는 대신 문제점을 줄이는 식으로 입법 효과를 내자는 설명이다.

정현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현재 체계가 합당하지 않아도 플랫폼을 통한 방지 조치가 처음 시행됐다는 의미에서 가치 있는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미비한 법령이나 시행규칙은 수정과 개정, 신설 등으로 고쳐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혜진 변호사는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예상되고 일반의 통신 자유 침해 관련 반대 목소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단 법의 취지에 맞게 운영을 해보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 가야 한다”며 “법이 처음부터 완전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죄형법정주의에 대해서는 “형벌의 근거가 명확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운영해 가면서 법령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시행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잘 운영할 방안을 각계에서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설 예정이던 서 변호사는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본지 전화 통화로 의견을 냈다.

이수정 교수는 시행령에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랜덤 채팅앱 규제 방안이 반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가부는 랜덤 채팅앱 중 성매매 등 청소년에게 불건전 만남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앱을 이번달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한다. 본인 특정 여부와 대화 저장, 신고기능이 없는 앱이 대상이다.
 

정현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가 21일 오후 서울 바른빌딩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통해서 본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에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심포지엄 중계화면 갈무리]

기존 판례를 시행령에 넣으면 죄형법정주의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 변호사 대신 참석한 허윤정 변호사는 “유통 방지 조처는 대법원 판례가 명쾌하다”며 “키워드 입력에 대한 법원 판단이 구체적이어서 죄형법정주의 위반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판례 속 요소를 시행령에 넣으면 문제될 점이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심영섭 위원은 그간 사업자 의지에 달려온 영상물 삭제 문제 해결에 무게를 뒀다. 여성가족부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준수사항을 사업자들이 이행하지 않고 있어 해당 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심 위원은 “저희와 경찰, 여가부, 여성인권진흥원 등이 (문제 영상 삭제를) 요청하면 이행이 잘 안 된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삭제 조치하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처벌 규정에 대해서도 “국내는 99%에 달할 정도로 (삭제 조치) 이행률이 높지만 해외 사업자는 아니다”며 입법 의의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