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고 놀란 마음에 카메라에 담았고, 곧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마음속 예술혼은 점점 불타올라 무당벌레는 그의 이니셜이 됐다.
물방울이 그려진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는 항상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빨간색 무당벌레가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20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이영수 작가의 개인전 윈디데이(Windy Day)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양귀비밭에 바람이 부는 것을 표현한 작품을 비롯해 물방울과 무당벌레를 조화시킨 작품 등 신작 35점이 출품됐다.
전시장 2층에 들어서니 'Natural Image' 작품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가 풀잎 사이로 기어가고 있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져 자세히 보니 회화 작품에 입체로 만든 무당벌레를 붙였다.
이영수 작가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물방울을 찍으러 숲속에 갔다가 무당벌레 두 마리가 겹쳐있는 것을 봤다. 짝짓기하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며 "잊어버리고 있다가 다시 작업실에서 물방울 사진을 보다가 무당벌레 사진이 눈에 띄었다. 숲속에서만 놀지 말고 내 숲에서도 놀라는 마음으로 캔버스에 옮겨놨다"고 설명했다.
무당벌레는 그해 전시에서 큰 이슈가 됐고, 그다음부터는 물방울이 있는 그림에는 항상 무당벌레가 이니셜로 들어가 있다.
100호(162cm x 130cm) 정도 큰 캔버스에는 좀 더 편하게 놀라고 무당벌레에게 침대와 소파도 그려줬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당벌레가 이니셜에서 나와 오브제로써 작품이 됐다. 속이 빈 동(구리)으로 얇게 만든 무당벌레가 정교하게 그린 풀잎에 매달려 있다.
이영수 작가는 "작품에서 무당벌레가 입체로 나왔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침대를 나무로 빈티지하게 만들고 입체로 무당벌레를 얹혀서 조형물을 만들고 싶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이영수 작가는 평생 물방울과 양귀비꽃을 그려왔다. 작가는 자연의 결정적 순간을 주제로 하여 잎사귀에 맺힌 영롱한 물방울과 화려하고도 풍요로움이 가득한 양귀비꽃의 풍경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표현해 왔다.
"물방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청초하다, 영롱하다, 순수하다, 맑다 등이다. 이런 물방울이 빛을 받으면 주위의 모든 이미지를 담는 우주가 된다. 그 조그만 물방울 안에 산도 있고 강물, 냇가, 나무, 숲, 꽃 등 모든 자연을 삥 둘러가면서 품고 있다."
작가는 물방울 안의 세계에 빠졌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때로는 정교한 화법으로 때로는 뭉개면서 자신만의 세상을 담았다.
"마음속의 갈등은 욕심에 의해 생겨난다. 그러나 물방울은 있는 그대로의 우주를 다 품고 있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아무 때도 묻지 않는 '절대 선'이다. 물방울에 비친 우주처럼 내가 성장했을 때에도 착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기를 원한다. 물방울을 보면 내 마음이 착해지고 순수해지는 것 같다"
이영수 작가는 초기에 양귀비꽃과 함께 수국이나 연꽃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꽃은 양귀비꽃만 그리게 됐다.
"이거 저것 하는 것보다 옛날에 잔상에 남았던 양귀비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양귀비꽃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야들야들한 느낌들이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었는데, 커서 유럽여행을 갔을 때 그 넓은 양귀비꽃밭에 무궁무진한 컬러의 향연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양귀비꽃으로 좁혀졌다."
막내딸로 태어난 이영수 작가가 양귀비와 물방울에 빠진 것은 어릴 적 추억 때문이다.
"집의 정원이 예뻤다. 아버지가 저녁에 퇴근하면 호수를 길게 해서 정원에 물을 준다. 오빠들이 많은 집안의 막내딸이어서 항상 물 주는 것을 따라다녔다. 물을 주고 난 다음에 나뭇잎이나 가지에서 물이 뚝뚝하고 떨어지는 소리도 좋았고, 물방울이 떨어지기 찰나에 맺혀있을 때 햇빛이나 빛이 비추면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 잔상이 굉장히 많이 남아 있었다."
출품작인 윈디데이(Windy day) 시리즈는 초창기의 양귀비꽃보다는 조금 더 탱탱하고 주변의 여백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 화면을 꽉 차게 그렸다. 이번 시리즈는 양귀비꽃의 실제 가녀리고 흔들흔들하는 거를 더 부각해서 화면 처리했고 여백도 많아졌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저 뒤에 뭔가 더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작가의 말처럼 배경이 캔버스의 올조차 보이지 않게 굉장히 판판하다. 그 처리가 유화로 하기에는 힘든 작업으로 배경 처리를 하기 위해서 채색하기 전에 밑 작업을 10번씩 했다고 한다.
▶"어깨가 빠질 것 같은 그리기 작업"
이영수 작가는 대작의 경우 1년에 3~4개 정도 그린다. 전업 작가로서는 아주 적은 숫자이다.
"내 작품은 유화지만 맑은 수채화 같은 느낌이 난다. 이런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밑 작업이 중요하다. 물감을 얇게 펴서 바르고, 말리고, 또 바르고 하면서 10번을 겹겹이 칠한다. 물감을 덕지덕지 바르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공이 많이 들어간다."
이 작가는 "어깨가 빠질 것 같다"라고 하면서도 토요일, 일요일도 쉬지 않고 작업했다. 때로는 너무 힘든 것을 아는 동료 작가가 작업 방식을 바꾸라는 지적도 하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영수 작가 누구?
이영수(59) 작가는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선화랑, 인사아트센타, 장은선 갤러리, VIDI 갤러리 등에서 총 23회의 개연전을 열었다.
마니프 주최 한국구상대전 2017 우수작가상, 상공미술대전 우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등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 청파회, 신작전 회원이며 숙명여대 미술대학 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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