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윤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 뮤직비디오가 떠오른 것은 아마도 양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천재성 때문인 것 같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갤러리조선에서 윤상윤 작가의 개인전 '시네 케라'(Sine cera)를 6월 13일까지 열린다.
라틴어인 '시네 케라'를 한국말로 바꾸면 '왁스를 사용하지 않았다'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도기(陶器)의 갈라진 틈을 메꾸려고 왁스를 사용했고, 왁스를 사용하지 않는 도기를 진실한 도기로 인정했다.
현대에 이르러 이 용어(Sine cera)는 'sincerely'의 어원이 되어 '꾸며내지 않은', '(눈속임 없이) 진실된'의 의미가 됐다.
윤상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숙련되고 진실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갤러리조선에서 만난 윤상윤 작가는 양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때문이라고 했다.
윤 작가는 "원래는 왼손잡이였다. 부모님이 왼손을 쓰지 말라고 해서 오른손을 쓰기 시작했다" 며 "어릴 때부터 글씨 쓰는 것, 밥 먹는 것은 오른손으로 했다. 그림은 양손으로 그리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서양화 기법과 동양화 기법을 모두 사용하지만, 각각 한 손씩 임무를 부여했다.
"서양화 기법은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으로 완성하고 동양화 기법은 머릿속에서 그려놓고 한 번에 수정 없이 그려낸다. 그래서 오른손으로는 수정해서 올라가는 기법을 쓰고 왼손으로는 수정 없이 바로 뽑아내는 드로잉을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신작들은 마치 최신 3D 게임화면을 닮았다. 어두운 바탕이 아닌 밝은 바탕에서 캐릭터들이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윤 작가는 "두껍게 바로 칠하는 기법이 아닌 '글레이징(glazing)' 기법을 썼다" 며 "밑바탕으로 흑백 톤을 잡고 어러 번 색을 겹쳐 올려서 하는 기법인데 색을 더 올릴 수 있지만 멈춘 것이다"고 설명했다.
글레이징이란 밝은 불투명색 위에 어두운 투명색을 얇게 칠하는 것이다. 밑의 그림이 보이기 때문에 불투명 물감으로 덧칠했을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 밑부분에는 항상 물이 나온다. 물은 작품을 3층 구조로 나타내는 첫 번째 구조인 동시에 무의식의 영역이다.
윤 작가는 "작품에서 3층 구조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물은 1층, 지상은 2층, 하늘은 3층으로 만들었다" 며 "차례로 무의식, 에고, 슈퍼에고가 되는 것이다. 물이 두렵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듯이 여러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에는 또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인물들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하고 작가가 직접 만난 사람들이다.
그는 "갤러리 큐레이터도 있고, 동료 작가도 있고 저도 등장한다. 아무 관계를 맺지 않는 타자인 인터넷 사진으로 본 것을 그린다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며 "배경도 파주 작업실 주변에서 직접 사진을 찍은 것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추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첼시예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유학한 윤상윤 작가는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작품을 좋아한다.
가까이서 보면 한없이 섬세하고 멀리서 보면 추상화 같기도 한 터너의 작품 스타일에 빠져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등장하는 인물들은 표정이 보일 정도로 굉장히 섬세했다.
그는 "어렸을 적에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재밌었지만, 대학에 가면서 설치도 해야 하고 퍼포먼스도 해야 하고 영상도 해야 하고 특히 개념 미술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며 "미적인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반발감으로 아예 더 잘 그려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영국에 있을 때도 학생들 그림에 미완성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그런 유행에 반발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윤상윤 작가가 그려내는 양손 그림은 터너를 닮아가면서도 전혀 새롭게 느껴진다. 저변에 깔린 고전 위에 새로운 현대적 감성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다. 회백색 톤으로 시작하는 BTS의 뮤직비디오처럼 그의 작품에서도 세계적으로 통하는 가능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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