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인천지방법원 경매 법정이 전세사고의 후폭풍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으로 변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항력을 포기한 전세사고 물건이 잇따라 경매에 나오면서, 경매장은 사고 물건을 정리하는 ‘사후 처리 시스템’의 성격을 띠는 모습이다. 전세제도가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지난 2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인천지방법원 2층 13계 앞은 입찰을 앞둔 예비 응찰자들로 붐볐다. 2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연령층은 다양했지만, 대부분이 전세사고 물건을 중심으로 권리분석과 가격 산정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입찰 마감 뒤 낙찰 결과를 발표하는 시각이 되자 법정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해졌다. 복도까지 넘어온 사람들도 작은 확성기 소리에 귀를 모았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나온 28건 가운데 6건, 약 20%가 HUG의 ‘대항력 포기’ 물건이었다. 전세보증금을 대신 변제한 HUG가 채권 회수를 위해 경매를 신청하면서 대항력을 스스로 포기해 낙찰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대항력이 남은 주택은 낙찰자가 임차보증금 인수 위험을 떠안아야 해 기피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전세사고 물량이 몰린 인천에서는 최근 이 같은 형태의 물건이 빠르게 늘고 있다.
HUG는 직접 입찰을 통해 ‘셀프 낙찰’을 받는 경우도 반복하고 있다. 이날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한 아파트는 감정가 1억8600만원에서 두 차례 유찰돼 최저가가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최종 낙찰자는 HUG였다. 9명이 몰린 경쟁 속에서 HUG는 감정가의 68%인 1억2596만원을 적어냈다. 같은 지역의 다른 두 매물도 HUG가 비슷한 가격대로 가져갔다. HUG는 이렇게 낙찰받은 매물을 ‘든든전세주택’ 등 임대사업에 활용하고 향후 회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경매 현장에서는 “HUG 물건이 시장 전체의 가격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매를 찾은 40대 A씨는 “대항력 포기 물건은 권리 부담이 없어 응찰자가 몰리는 편이지만, 공기업이 대규모로 경매 시장에 개입하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전세제도 붕괴의 ‘현장 신호’로 해석한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HUG가 대항력을 포기해도 낙찰자가 임차보증금을 인수하지 않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몰리지만, 이는 결국 전세사고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근본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사후 정리만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HUG 물건이 경매 법정을 채우는 현상은 단기적으로 보증기관의 손실 완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세보증금 보호 체계 전반의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단순 회수 전략만으로는 제도 정상화가 어렵다는 진단이 힘을 얻는다. 전세사고가 계속되는 한 HUG의 대항력 포기 물건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전세제도가 남긴 잔해는 지금 경매 법정으로 밀려오고 있다. 현장은 이미 ‘사고 후 정리 시스템’이라는 성격을 넘어, 전세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공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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