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엔씨소프트 리니지는 일명 '린저씨(리니지+아저씨)'로 불리는 고액 과금 이용자가 경제를 떠받치는 게임으로 유명하다. 린저씨들은 캐릭터 성능을 높이기 위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현금을 쏟아붓는 이들로 게임 캐릭터를 부동산, 주식 같은 자산으로 간주한다. 리니지의 매출 창출 능력을 경험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 리니지M, 리니지W 같은 리니지류 게임만을 고집했고 이는 현재 회사가 위기를 맞은 요인 중 하나가 됐다.
메이플과 리니지는 대표적인 '쌀먹' 게임으로 불린다. 쌀먹은 게임 내 재화를 팔아 쌀을 사 먹는다는 뜻으로 한국 게임이 안고 있는 문제 대부분과 연관돼 있다. 게임 경제가 현실과 과하게 연결되면서 게임이 소수 극성 이용자의 전유물로 전락해버리고 결국은 해당 게임의 사회적 인식 악화와 수명 단축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른바 메이플 아즈모스 협곡 사태는 일부 이용자들이 이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줬다. 메소 가격 하락으로 인해 아이템의 현금 가치가 떨어졌고 이용자들 사이에선 "템값이 나락 갔다(아이템 값이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뜻)"는 자조가 터져 나왔다. 그 배경에는 아이템 제작·구매에 투자한 비용을 추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게임이 주식시장? 메이플 '패닉 셀' 사태의 전말
메이플의 경제는 화폐 역할을 하는 메소, 현금으로 충전하는 넥슨캐시, 그 중간 단계인 메이플포인트가 근간을 이룬다. 메이플포인트는 넥슨캐시로 구매할 수 있으면서 게임 내 거래소인 '메소마켓'을 통해 메소와 변동 비율로 교환이 가능하다. 지난 19일 기준 이 비율은 1억 메소당 2400메이플포인트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2월 넥슨 측은 가뜩이나 복잡한 경제 시스템에 '메이플 주화'라는 재화를 추가로 도입했다. 주화는 브론즈·실버·골드·다이아로 나뉘며 등급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교환 가능한 메소가 10배씩 늘어난다. 주화를 메소로 바꿀 때 일정량의 메이플포인트를 지불해야 한다. 19일 현재 가장 많이 유통되는 골드 주화의 경우 1개당 300메이플포인트를 내면 약 5000만 메소로 바꿔준다. 예를 들어 메소마켓에서 1억 메소를 내면 주화 8개(4억 메소)와 교환 가능한 메이플포인트를 얻는다.
아즈모스 협곡은 메소가 아닌 주화를 지급해 이용자들이 메이플포인트를 소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넥슨 측은 메이플포인트를 주화 교환뿐 아니라 추가 보상을 얻을 때도 쓰이도록 했다. 2500메이플포인트를 내면 주화 3개를 주는 식이다. 교환 비율에 따라 계산하면 결과적으로 5000만 메소를 얻기 위해 필요한 메이플포인트는 833에 수수료 300을 더한 1133메이플포인트다. 즉 1억 메소당 약 2266메이플포인트로 교환 비율이 정해진다. 메소마켓 시세(1억:2500)를 고려하면 아즈모스 협곡을 통해 1억 메소당 약 10% 수준의 이득을 보는 셈이다.
메소 패닉 셀은 아즈모스 협곡 출시 직후 '인벤' 등 메이플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메소와 메이플포인트 교환 비율이 1억 메소당 1333메이플포인트까지 떨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메소 가치가 더 내려가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메소를 메이플포인트로 바꿔 놓으려는 이용자들이 보유 중인 메소를 메소마켓에 대거 매도했다. 주가 폭락이나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과 같이 이용자의 공포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실제 아즈모스 협곡 출시 직후 게임 내 메소 생산량이 14%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메소 가격은 이보다 큰 30~40%가량 폭락했다.
메이플 운영진은 게임 경제가 혼란을 야기한 일차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메소와 넥슨캐시 이외에 메이플포인트와 주화를 도입함으로써 경제 시스템을 일반적인 이용자가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화 가치 보전과 투자 회수에 몰두하는 이용자들의 오해로 빚어진 촌극이다.
◆운영진이 의도한 '정상화'…근본적 변화 없인 불가능
메이플 운영진이 이같은 체제를 만든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불법 프로그램이나 소위 작업장을 통해 메소를 대량으로 생산,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현금을 받고 판매하는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서였다. 쌀먹 이용자를 게임에서 배제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게임 수명을 늘리겠다는 의도다.
아즈모스 협곡 사태 이전에도 메이플 이용자들 사이에선 게임 재화의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논란이 잇따랐다. 지난해 2월 서울동부지법은 피해자를 감금한 채 하루 4시간씩 메이플 사냥을 강요한 혐의로 20대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피해자로 하여금 메이플 사냥을 시키고 아이템을 판매해 1500만원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단순히 아이템 거래로 현금을 얻는 행위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지난 2022년 신규 장비 아이템 '에테르넬' 세트가 등장하자 일부 이용자가 기존에 보유 중인 장비의 가치 하락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전까지 최고 레벨 장비 아이템은 2016년 8월 출시된 '아케인셰이드' 세트였다. 8년 만에 이뤄진 새로운 아이템 출시를 오히려 이용자들이 반기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메이플 아이템이 현실의 자산으로 변질되고 이용자가 '템값'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기형적인 수익 모델(일명 'BM')에 있다. 메이플은 2003년 4월 정식 서비스 이후 20년 넘게 장수 게임으로 자리 잡으면서 장비 강화 수단이 늘어나고 난이도가 올라갔다. 한 장비 아이템에만 강화 수단이 5개나 존재하고 이러한 아이템이 모자, 상의, 하의, 무기 등을 비롯해 한 캐릭터에 20개 이상이다.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려면 무려 100가지의 강화를 성공해야 하는데 모두 확률이 작용한다. 좋은 옵션을 뽑기 위해 많게는 수억원의 현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올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넥슨에 과징금 116억원을 부과한 것도 결국은 이 때문이다. 과징금 부과 원인이 된 '큐브'는 5가지 장비 강화 수단 중 2가지와 관련한 아이템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넥슨은 이용자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특정 옵션 등장 확률을 임의로 조정했고 이를 통해 연간 2000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용자들은 "메이플이 리니지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998년 첫 출시된 리니지는 한국 게임 산업 규모를 키운 주역이지만 과도한 과금 유도로 아이템이 자산처럼 됐고 지금은 '린저씨'만 하는 게임 취급을 받는다. 과금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질하지 않는 한 운영진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게임'으로 변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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