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계열사인 영풍정밀은 지난달 20일 영풍 장형진 고문과 김광일 MBK 부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닷새 뒤인 지난달 25일 영풍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노진수 전 대표이사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맞고소했다. 고소고발이 이어지는 사이 양측은 각자의 입장문을 냈고 상대방 입장문에 대해선 '근거없는 루머''시장 교란 행위'라고 비난했다.
향후 핵심 쟁점은 고려아연 경영진이 회사의 자금을 사용해 자사주를 매입한 게 배임에 해당할지, 양측 비방전이 부정거래행위 요건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될 걸로 보인다.
우선 상법 제341조1항에 의거해 법적으로 회사의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건 허용돼 있다. 다만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에서 이번 공개매수처럼 수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선례는 없다. 통상적인 자사주 매입·소각 과정과 차이가 있다는 면에서 해당 행위가 무조건 허용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법률 전문가들은 해당 자사주 매입이 배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상이한 입장을 내놨다.
이동구 법무법인 서울제일 변호사는 "원래 이익잉여금 한도에서 회사의 자금으로 자사주를 살 수 있지만, 기존에 해당 이익잉여금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을 수 있다"며 "그걸 모두 헐어서 자사주 매입에 쓴다는 건 기존 주주들이 묵시적으로 동의해 온 걸 깬 것"이라며 배임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다만 김광중 클라스한결 법무법인 변호사는 "배임이라면 자기 또는 제3자에 대한 이익이 성립돼야 하는데, 원칙적으로만 적용한다면 기업의 사회적 기부 행위도 배임에 해당한다"며 "그래서 법적으론 배임 요건을 계속 좁히는 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번 사례가 배임에 해당할지 여부는 알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부정거래행위에 대해선 양측이 모두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 자본시장법 제178조1항과 2항에선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과정에서 부정한 수단·계획·기교를 사용하거나, 중요 사항에 거짓을 기재 또는 표시하는 걸 부정거래행위로 보고 있다. 상당히 넓은 요건을 두고 있는데 공개매수도 계약으로 이뤄진 일종의 금융상품이기에 해당 법률의 영향을 받는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9일 양 측 공개매수 과정에서 불공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 지시를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지난 3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공개매수 과정에서 불법적인 시세조종을 진행했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금감원이 고려아연과 영풍에 대한 회계심사에 들어간 것도 위법 행위 감시의 일환으로 보인다.
여러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법적 판결까진 수년 이상 걸릴 전망이지만, 전문가는 이번 법적 분쟁이 새로운 사회적 합의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걸로 기대했다.
김 변호사는 "회삿돈으로 임원 지위를 차지하는 행위를 우리가 계속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이번 공개매수 경쟁을 계기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며 "법질서가 그걸 용인하는 게 타당한지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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