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수도권에 있는 또 다른 전시장에선 BYD가 지난해 4월 출시한 1t 전기 트럭 'T4K'를 만날 수 있었다.
이름부터 '한국을 위한 트럭(Truck for Korea)'인 T4K는 현대자동차 '포터'를 빼닮았지만 곳곳에서 차별화 시도가 엿보였다. 포터와 비교해 T4K는 운전석을 더 많이 젖힐 수 있어 차를 잠시 세워 두고 편하게 쉴 수 있다. 또한 1회 충전 주행거리는 241㎞로 포터(211㎞)보다 길다. 무엇보다 포터에는 없는 V2L(차량에서 외부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능)을 지원한다.
해당 전시장의 지점장은 "한국 시장을 겨냥해 나온 모델이다 보니 BYD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했다.
◆'홍치'는 실패한 韓 승용차 시장 진출, BYD '도전장'
T4K를 바라보는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는 게 앞선 지점장의 설명이다. 그는 "출시 초기에 고객 문의가 상당히 많았다"며 "BYD라는 브랜드에 의구심을 갖는 고객도 있었지만 현대차 포터보다 불편한 점이 크게 없어서 좋게 보신 분도 있었다"고 했다.
소비자의 이런 시선과는 별개로 BYD 본사는 한국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아직은 1t 트럭과 전기 버스만 판매하지만 올해 4분기 승용 모델 3종을 내놓을 계획이다. BYD는 7월 말 현재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영업망을 구축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BYD의 한국 진출 전략은 '고급화'다. 국내 소비자의 중국 브랜드를 향한 '저가 제품'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는 것이다. 새로 문을 열 전시장 중에는 수도권에서도 소득 수준이 높은 서울 강남·송파, 경기 성남 분당 지역에 자리를 잡은 곳도 있다.
상용차를 제외한 승용차 부문에서 국내 시장 진출을 시도한 브랜드는 BYD가 처음은 아니다. 중국 고급차 브랜드 홍치는 이른바 '대륙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리는 고급 세단 'H9'을 한국에 출시하려 했다. H9은 지난 2021년 인증을 위해 2대가 수입됐으나 출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BYD가 예정대로 승용 모델 3종을 출시한다면 해당 차량들은 한국에서 판매까지 이뤄진 최초의 중국 브랜드 승용차 타이틀을 얻게 된다.
BYD가 본격적으로 한국 진출을 추진하기 전까지 중국 자동차 업체는 자체 브랜드 차량을 내놓기보단 유럽 브랜드를 통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우회 방식을 택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리자동차다. 중국 최대 자동차 기업인 지리차는 스웨덴 볼보자동차의 최대 주주다. 볼보차는 올해 상반기 기준 메르세데스-벤츠, BMW, 테슬라에 이어 국내 수입차 판매량 4위를 차지했다.
지리차는 볼보차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수차례 강조했지만 모·자 관계인 두 회사는 신차 개발 과정에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볼보차가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한 소형 전기차 'EX30'은 지리차 플랫폼을 토대로 중국에서 생산 중이다.
지리차는 르노코리아자동차 2대 주주이기도 하다. 지리차는 지난 2022년 르노코리아 지분 약 34%를 확보했다. 르노코리아가 9월 정식 출시 예정인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뉴 르노 그랑 콜레오스'는 지리차의 '싱유에 L'을 일부 변형한 모델이다. 유럽 브랜드인 르노가 중국 업체로부터 차량의 골격을 가져와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볼보차·르노코리아·지리차 간 삼각관계는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가 신차를 한국에서 생산하기로 하면서 한층 깊어졌다. 폴스타는 볼보차와 지리차가 2017년 합작한 회사로 현재는 지리차가 이 회사 지분을 절반 넘게 갖고 있다. 폴스타는 오는 2025년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에서 신형 전기차 '폴스타 4'를 생산한다.
지리차는 영국 경량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도 갖고 있다. 2017년 지리차에 인수된 로터스는 지난해 로터스자동차코리아를 출범하고 서울 강남구에 전시장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국내 미디어를 대상으로 열린 출범 행사에는 지리차 본사 경영진이 비밀리에 방문하기도 했다.
지리차는 자사 고급 전기차 브랜드 '지커'를 통해 직접 한국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볼보차나 폴스타, 르노코리아를 앞세운 기존 전략과 다르다. 지커는 오는 2025년 말 수도권에 전시장을 열고 2026년 1분기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BYD와 지리차 등 중국 자동차 업체가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크고 고급스러운 차가 잘 팔리는 특성 때문이다. BYD와 지리차가 고급화 전략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소비자는 가격을 더 내고서라도 상위 모델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에 등록된 상위 10개 국산차 중 2000만원 초반 가격으로 구매 가능한 차량은 기아 셀토스와 레이, 현대차 아반떼 밖에 없었다. 수입차 등록대수 상위 10개 차종 중에서도 테슬라 모델Y와 모델3를 빼면 판매 시작 가격이 6000만원 이하인 차량은 없다.
유럽 자동차 브랜드 관계자는 "한국은 적은 유지비와 실용성을 주로 따지는 소비자가 많은 유럽과 달라 본사에서도 주의 깊게 보는 지역"이라며 "시장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중국 차에 씌워진 '저가' 이미지를 벗기 위한 관문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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