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금융위원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 해소를 위한 핵심 과제로 불공정거래 대응과 주주 권리 제고를 꼽았다. 세부 과제로는 물적분할 규제 강화, 내부거래 사전 공시, 배당 절차 개선, 자사주 보유 제한 등이 포함됐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경제단체와 일부 기업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오히려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주주 가치 제고라는 기본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밸류업 프로그램의 방식을 문제 삼는 모습이다.
재계가 신경을 곤두세운 건 금융위가 지배구조 개선을 언급하면서다. 금융위는 지난 2일 기업 경영 활동에 대한 외부 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이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배구조 우수 기업을 선정해 감사인 지정을 면제하는 게 대표적이다. 감사인 지정 제도는 기업이 누구에게 회계 감사를 받을지 스스로 정하는 대신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정해주는 제도다.
당장 '우수한 지배구조'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놓고 잡음이 나온다. 기준이 모호할 뿐더러 한국에서 통용되는 지배구조의 정의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일단 기업 의사결정 구조와 감시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소유 형태까지 밸류업 프로그램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지난 15일 한경협 주최로 열린 좌담회에서 "소유 구조 자체가 지배구조 기준이 되기는 어렵고 일방적으로 좋은 소유 구조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기업 지배구조를 비롯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가 기업 가치를 높인다는 주장은 증명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국내 기업에 투자한 내국인을 달래는 차원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재계에서는 국내 증시에 개인 소액 투자자가 많은 점을 그 이유로 든다. 예탁결제원이 집계한 지난해 말 내국인 개인 투자자는 1400만명 수준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전만 해도 600만명에 그쳤으나 몇 년 새 2배 이상 급증했다. 주식 거래 대금 중 60~70%는 이들 몫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 증시 시가총액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남짓인데, 미 월가 같은 곳에 있는 대형 투자자는 포트폴리오에서 해당 비율 이상을 투자할 수가 없다고 들었다"며 "외국인, 기관투자자가 많이 들어와야 주가도 오르는데 현실은 개미들 반발을 의식한 공매도 금지였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른바 '저PBR주'에 과도한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에 대한 경계 목소리도 나온다. 한경협 관계자는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수익비율(PER) 이런 것들이 강조되면서 기업 줄 세우기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어 "가장 걱정되는 게 행동주의 펀드가 주총 때마다 주총 때마다 기업을 흔들고 빠지는 것"이라며 "기업 줄 세우기로 가는 순간 소위 저PBR 기업은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될 게 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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