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시간이 없다", "가혹한 위기 상황이다", "시장의 냉혹한 현실 보고 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우려한 위기가 현실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1~3월) 매출 70조원 붕괴와 1조원이 채 안 되는 영업이익을 발표하며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반도체는 "감산은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났다.
삼성전자는 7일 2023년 1분기 잠정 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 63조원, 영업이익 6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77조7800억원)과 비교해 19%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년 전 14조1200억원에서 95.75%나 빠지며 20분의1 수준으로 쪼그라졌다.
삼성전자의 1분기 매출이 60조원대로 떨어진 것은 2021년(65조3885억원) 이후 2년 만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개 분기 모두 70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연간 매출 300조원 시대를 열었지만 올해는 출발부터 어려워졌다. 영업이익 1조원대 붕괴는 2009년 1분기(5900억원) 이후 14년 만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잠정 실적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설명자료를 냈다. 삼성전자는 "정보기술(IT) 수요 부진 지속에 따라 부품 부문 위주로 실적이 악화되며 전사 실적이 전 분기(2022년 4분기)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전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반도체, 그중에서도 메모리다. 삼성전자는 분기별 경영설명회 전까지 부문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적자를 4조원 수준으로 봤다.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본격화한 세계 메모리 시장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을 생각하면 실적이 나빠진 주 요인은 메모리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는 매크로(거시) 상황과 고객 구매 심리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와 다수 고객사의 재무 건전화 목적 재고 조정이 지속하면서 전 분기 대비 실적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스템 반도체와 삼성디스플레이(SDC)도 경기 부진과 비수기 영향 등으로 실적이 하락했다"고 덧붙였다.
그간 유지한 '무(無)감산' 기조도 깨졌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가격이 원가 수준으로 근접하는 가운데서도 인위적으로 메모리 생산량을 줄이지 않겠다고 했으나 결국은 감산을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특정 메모리 제품은 향후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는 판단"이라며 "라인 운영 최적화와 엔지니어링 런(Engineering Run·시험 생산) 비중 확대 이외에 추가로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감산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시스템 반도체 실적도 하락했다고는 했지만 높은 메모리 비중이 영업이익 축소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SDC를 제외한 DS부문 매출(98조4600억원) 중 메모리 매출(68조5300억원) 비중은 69.6%에 이른다. 과거 70% 중후반대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높다. 이는 특정 제품 시장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로 수년 전부터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재용 회장의 걱정도 이와 맞닿아 있었다. 이 회장은 틈날 때마다 '위기'를 강조했다. 그는 2020년 5월 중국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돌아보며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해 6월 경기 화성시 반도체 연구소 간담회에서는 "가혹한 위기 상황"이라며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 있다"고 역설했다.
빠르면 올해 하반기 메모리 시장이 '보릿고개'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메모리 이외 사업 비중을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필수 클린룸 확보를 위한 인프라 투자는 지속하고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비중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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