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이른바 '100년 기업' 탄생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 약탈적 상속세를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뿐 아니라 가업(家業) 승계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기업 승계 활성화를 위한 개혁과제 세미나'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제언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현재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대기업 최대 주주에 할증 세율을 부과하는 '최대 주주 할증평가 제도'를 적용하면 최고세율은 60%까지 높아진다.
황 교수는 "다른 국가는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을 잃는 경우를 배제하는 장치를 두고 있어 상속인이 경영권을 잃지 않도록 한다"며 "우리나라는 기업을 승계할 때 경영권을 포기하게끔 만든다"고 말했다.
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스웨덴을 포함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총 12개국이다. 스웨덴은 상속세가 없지만 한국의 양도소득세와 같은 '자본이득세'가 있다. 기업을 승계받을 때 세금을 내지 않고 다른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매각할 때 차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황 교수는 "스웨덴, 캐나다, 호주처럼 자본이득세를 도입해 이익이 발생했을 때 과세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 주식은 잘 가꿔야 하는 나무고, 잘 가꿔 놓은 주식을 상속받은 후 가처분소득으로 만들 때 과세해야 한다"며 "세율도 국제적인 스탠더드에 맞춰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익재단을 활용한 기업 승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공익재단을 활용하면 안정적인 승계로 기업 영속성이 늘어날 수 있다"며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국가와 정부 역할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외국 주요 기업 소유주(오너) 중 일부는 상속세 없는 공익재단을 출연해 차등 의결권을 허용받는 대신 고용을 지키며 수익 대부분을 기부한다고 소개했다. 차등 의결권 제도는 주식을 오래 보유한 주주나 창업주에게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한 예로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메타 회장은 2015년 아내 프리실라 챈과 함께 '챈-저커버그 이니셔티브'라는 유한책임회사(LLC)를 설립했다. 그는 주식 52조원어치를 본인 이름으로 된 재단에 기부한 후 메타의 차등 의결권을 보유했다.
미국에서는 통일유한책임회사법에 따라 LLC가 자산을 매각할 때 양도세 면제·기부금 공제해준다. 최 교수는 국내에서도 공익재단에 대한 △주식 취득 제한 △주식 보유 제한 △의결권 제한 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공익법인은 정부가 세금으로 해야 할 공익사업을 대신하기 때문에 세제 지원 타당성을 갖는다"며 "공익법인이 출연한 주식에는 상속·증여세 면세 비율을 2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대주주에 대한 의결권 제한 역시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세미나는 박대출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한국기업법연구소 주최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주관했다.
박 의원은 축사를 통해 "원활한 기업 승계를 통해 기업의 미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선진국 수준의 장기 기업 조성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상속세 개편과 공익재단 활성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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