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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김남규의 금융만사] 3년 전 실패한 코인 정책의 데자뷔

김남규 시장금융부 부장 2021-03-18 10:42:12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동방] 국내 가상화폐(암호자산) 거래소에서 한때 비트코인 1개의 거래 가격이 7100만원을 넘어서는 등 과거 전세계를 강타했던 묻지마식 투기 광풍이 재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한국 정부는 비트코인 투기 광풍 현상과 관련해서 부처 간에도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채, 기존의 거래소 규제 방침만을 고수하고 있어 3년 전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최근 비트코인 가격 폭등의 원인을 살펴보면,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암호자산의 가격 급등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12월 말 미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시행했을 당시에도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보인 전례가 있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게다가 최근 미국 국회를 통과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시행되면 국민 1인당 1400달러의 현금이 지급돼 전체 통화량 급증에 따른 코인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전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사태가 비트코인의 가격폭등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15일(현지 시각) 보도를 통해 전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이 채굴용 칩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고, 결국 채굴을 통한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했다는 논조를 폈다.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컴퓨팅 리소스의 총량과는 별개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일한 채굴량이 보장되는 블록체인 네트워크 생태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월스트리트저널의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명확하게 원인을 찾기 힘든 비트코인 가격 폭등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긴 하다.

여기에 비트코인을 받고 전기차를 팔겠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괴짜 같은 행보와 일부 가맹점에서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하겠다는 마스터카드의 발표. 그리고 포춘지가 운영하는 ‘리더십 넥스트’ 팟캐스트에 출연해 비트코인 결제와 환전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밝힌 알 켈리 비자 CEO의 발언 등도 비트코인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끔 하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가격 폭등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할 듯 싶다. 결국 비트코인 가격 폭등은 공급보다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곧 더 많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의 자산 가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비트코인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과거 블록체인 1세대 개발자들은 블록체인은 차세대 신기술이며,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비트코인이 데이터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생태계를 확산하기 위해 유인책으로 제공하는 '디지털 금'이라고 주장했다.

현 시점에서 퍼블릭 블록체인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네트워크와 비트코인을 분리할 수 없다던 기존 개발자들의 주장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서비스 측면에서 활용도가 낮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기술보다 별 쓸모는 없지만 위변조가 불가능한 비트코인 자체의 가치에 집중하는 ‘주객전도’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맹목적인 투기 광풍이 불던 3년 전과 시점과 비교해 최근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자체를 하나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기류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투기냐? 투자냐?”, 혹은 “비트코인이 화폐냐 아니냐”는 식의 2분법적 접근 방식이 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비트코인 열풍을 우려하는 각국 정부의 입장이 3년 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달 16일 비트코인 가격이 5만달러를 찍은 직후,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비트코인은 투기성이 강하다. 투자자들이 겪을 수 있는 잠재적 손실이 매우 우려된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투기 광풍 확산을 우려한 인도 정부는 아예 비트코인을 보유하기만 해도 처벌하겠다며 관련법안을 마련 중이며, 이웃나라 중국 역시도 채굴에 소요되는 전기 에너지 절감을 이유로 암호자산 채굴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 현상이 당황스럽기는 한국 정부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한국 정부가 앞서 언급한 해외국가들과 달리 국내 투자자에게 비트코인 가격 급등에 대응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강력한 규제를 내세워 거래를 억제하려는 시도와 동시에 비트코인 자체를 자산으로 인정해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려는 모순된 정책을 추진 중이다.

먼저 한국 정부는 오는 25일부터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시행령(특금법)’ 개정안을 시행한다. 이와는 별개로 비트코인 거래 양도세 부과시스템 구축 중이기도 하다. 특금법을 만들어 자격 미달의 거래소를 퇴출시켜 시장을 정화하고 거래 투명성을 강화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발상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거래소 규제를 통한 암호자산 거래 통제는 현실화 된 듯 보인다. 최근 국세청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이용해 재산을 은닉한 고액체납자 2416명에 대해 366억원을 현금을 징수하고 채권을 확보한 사례가 그것이다. 거래소에 축적된 거래정보를 분석해 개인의 탈세를 적발한 것인데, 이는 블록체인의 기본 사상인 탈중앙화 및 익명성 보장과는 괴리감이 있어 보인다.

이에 앞서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 양도 시 발생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20%의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기본 공제금액은 250만원이다. 따라서 내년부터 비트코인으로 1000만원의 수익을 내면 250만원을 공제한 나머지 750만원에 대해 20%인 150만원의 세금을 내야할 판국이다.

문제는 현 정부의 정책 암호자산 관리 정책이 해외 거래소에서 거래한 개인까지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3년 전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을 당시 박상기 법무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서서 국내 거래소를 규제해 투기 열풍을 잡겠다던 상황이 재연된 것이다. 달라진 점은 세금 20%가 늘었다는 것 뿐.

관련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섣부른 정부 정책이 오히려 시장의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블록체인 열풍이 한창이던 3년 전. 수많은 인재들이 저마다 부푼 꿈을 갖고 ICO(암호자산 공개) 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넘지 못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과거에도 시장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설익은 규제로 투기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국내에서 이렇다 할 암호자산 발행 기업을 배출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외국 기업들이 발행한 코인만으로 투기판을 조성한 꼴이 됐다.

맹목적인 암호자산 투기 열풍을 손 놓고 우려하기 이전에 현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현명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어설픈 규제로 암호자산 시장에 혼란을 주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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