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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경제적인 시선] 故 조양호 회장의 死石이 살아 돌아왔다, 아들에게로…

김병수 편집국장 2020-12-09 06:05:00

<바다를 탐한 죄 씻으니 하늘에 두 개의 문이 열렸다>

익숙한 게임 룰로 판을 바꿔라…대책반장 김석동의 등판

때마침 불어준 수송대란에 적폐청산 프레임까지 건진 청와대

국민 세금으로 만든 절체절명의 기회…조원태 회장의 비전 주목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1949.3.8~2019.4.8)의 말로(末路)는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 조중훈 창업주(1920.3.30~2002.11.17)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의 터를 닦고 아시아나항공 출범에 따른 항공업 경쟁 체제(1988년)를 이겨냈다. 아들 조 회장도 외환위기(1997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등 10년 주기로 찾아온 굵직한 위기를 극복했다.

수송(輸送) 총수 아버지를 따라 세계를 누비며 견문을 넓힌 장남 조 회장은 항상 자신이 넘쳤다. 우리나라도 고도성장을 이어가며 먹고사는 게 훨씬 좋아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해외여행이 폭발적으로 늘고 항공업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닦은 터에 2대 일우(一宇) 조양호가 우뚝 섰다.

그랬던 그가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예상하지 못했다. 바다 건너 타향에서 국내 재벌 총수의 부고(訃告)가 날아들 줄은.

◆원만치 않았던 友愛, 결국 터졌다

2008년 한진해운 사태가 조양호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3남 조수호 회장(1954.6.21~2006.11.26)의 한진해운은 안타깝게도 그의 단명(短命)으로 휘청거렸다. 조양호 회장 입장에선 수송보국의 한 축인 한진해운이 제수(弟嫂)에게 넘어간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을 터다. 제수 최은영 전 유수홀딩스 회장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 신정숙씨의 딸. 당시엔 한진해운을 롯데가 가지려 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떠돌았다.

호시탐탐 한진해운 경영권 획득을 모색한 조 회장은 찔끔찔끔 자금을 지원하면서 숨통을 조였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서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골은 예상보다 훨씬 깊었다. 한진해운 앞엔 끝없는 나락뿐. 그러다 2014년에야 제수로부터 한진해운을 넘겨받았다.

조 회장은 백방으로 뛰었으나 허사였다. 조 회장이 큰 애착을 보인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도 국정농단 사건(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엮이며 반강제 사퇴(2016년 5월 3일)로 막을 내렸다. 그해 8월 31일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끝내 한진해운을 살려내지 못하며 수송보국의 한 축이 한진그룹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조용히 출국했던 조 회장은 2019년 4월 눈을 감은 채 고국 땅을 밟았다.

당시 조 회장이 왜 그렇게 한진해운에 집착했는지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세간에선 동생 몫의 회사를 무리하게 빼앗아 화근을 키웠다는 평가부터, 형제들에게 흩어진 수송보국을 다시 꿈꿨다는 얘기 등이 술자리 안줏거리처럼 전해질 뿐이다. 어쨌든 형제 간 갈등이 적지 않았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그렇다면 동생 몫을 탐하다 추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해석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김석동 의장과 함께 급변한 산업정책

조양호 회장의 별세로 장남 조원태의 그룹 지배는 예상보다 빨라졌다. 부인과 자녀들의 이런저런 구설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에 코로나19를 맞았다. 항공업엔 치명타다. 전 세계인의 발이 묶이니 사람을 실어나를 비행기도 필요 없어졌다. 여객기에 화물을 싣는 임시방편으로 하루하루를 메워나가며 때를 기다렸으나,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꽁꽁 얼려버렸다.

딸(조원태 회장의 누나) 조현아씨의 한진그룹 경영권 투쟁도 조양호 회장의 빈자리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때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그룹의 정점 한진칼의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공무원 시절부터 '대책반장'이란 별칭을 썼던 그다. '퇴역 공무원의 노후 일자리'라는 혹평도 있었다. 이 관측이 뒤집히는 데는 반년 남짓에 불과했다. 1997년 엎어진 기아그룹의 구조조정을 위해 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등판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대책반장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했다.

앞서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자였던 HDC현산이 인수를 꺼리기 시작한 건 4월쯤부터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HDC현산이 밀당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HDC현산은 그때부터 한 번도 인수와 관련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지 않았다. 6월부터는 인수 포기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산업은행이 플랜B를 언급한 것도 이때쯤이다.

산업은행과 한진그룹이 사실상 공적자금(8000억원) 투입을 전제로 두 항공사의 합병 또는 위탁경영을 심각하게 검토한 것은 2개월 정도. 이 과정에 청와대가 직접 항공산업 합리화 방향을 교통정리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혈세 논란이 불가피한 공적자금 투입형 구조조정을 주채권은행이 혼자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와대에 구미 당기는 명분 그리고 설계

이렇게 이번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합병 밑그림은 산업 구조조정의 달인인 김석동 의장에 의해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언제나 그렇듯 고용 유지와 최소 자금의 투입이라는 구조조정 원칙은 청와대를 설득하는 밑거름이 됐다. 산업 구조조정, 빅딜, 공적자금, 이런 단어들은 김석동 의장에겐 이미 친숙한 단어다.

무엇보다 전 세계가 일자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양적 완화에도 전통적인 의미의 일자리는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우리 정부도 이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구조조정 인수·합병에서 일자리를 일정 기간이나마 유지하는 유일한 방안이 정부의 참여와 개입이다. 돈을 보탠 측의 입장이다.

여론이 삐딱하더라도 청와대가 흔들리지 않을 명분도 필요했다. 과거 한진해운을 파산시킨 것도 정부와 산업은행이었던 부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당시 국정농단 사건에 엮였던 조양호 회장의 처지는, 과거 정권의 국정농단 적폐를 청산하고 복원하는 정책으로 부활시키는 데 충분했다.

때마침 불어준 글로벌 물동량의 증가도 호재가 됐다. 지난 9월 이후 미주 노선의 해운 운임은 크게 올랐다. 컨테이너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4일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129.26으로 매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후 국적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이 글로벌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했지만, 여전히 한진해운 때보다는 힘이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렇게 현 정부는 우리의 수송망을 망가뜨린 전 정부의 잘못과 국정농단 적폐를 청산한다는 명분을 챙겼다. '부실+부실' 회사 합병이더라도, 회사를 없애 노동자가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정권이 아니라, 세금을 쓰더라도 노동자를 지키는 정권이라는 덤도 얻었다.

◆두 개의 하늘 문 맞이한 조원태 회장이 문을 닫지 않으려면···

이렇게 조원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집어삼켰다. 누나 조현아와 강성부 펀드(KCGI)의 집요한 공격도 되받아쳤다. 주(主)와 부(副)를 엄밀히 구분하긴 어렵지만, KCGI의 한진칼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이겨 경영권 분쟁에서 확실한 주도권도 잡았다. 꽤 의미 있는 성과다.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발표된 후 그룹 내에선 "불자(佛子)인 조양호 회장의 음덕(蔭德)인 것 같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회자됐다고 한다.

한진그룹과 대한항공 임직원들에겐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계기로 창업자로부터 시작한 수송보국의 꿈과 거침없던 질주에도, 늘 음지로 지목된 제수(최은영 전 유수홀딩스 회장)와의 한진해운 분쟁에서 시작해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로 이어진 악연(惡緣), 부인과 자녀들의 인성 논란으로 점철된 말년의 조양호 회장 모습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조양호 회장의 손에서 죽었던 한진해운(死石)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 돌아왔다고 촌평한다. 아버지가 바다(한진해운)를 탐한 죄를 하늘에서 씻어내니 아들 조원태 회장에게 하늘 문(아시아나항공)이 하나 더 열렸다는 꿈 같은 현실의 해설을 내놓기도 한다.

내년 4월 조양호 회장의 2주기 때쯤엔 '조원태 vs 조현아·강성부' 경영권 분쟁도 일단락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쯤 아들 조원태 회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절체절명의 기회를 살려 어떻게 보답할 것인지도 구체 계획을 내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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