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회장이 최근 별세하면서 그가 철강·정유 사업 진출 숙원을 풀지 못해 평생 아쉬워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말년에 중화학 등 기간산업을 유통과 함께 효자사업 반열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1960~1970년대 기업보국의 기치 아래 국가 에너지를 중화학 등 기간산업에 쏟아부을 때 롯데그룹은 창업 1세대 기업으로서 중화학보다는 소비재생산·유통 등 사업에 집중, 한국경제 부흥에 기여한 역할이 크지 않다는 일각의 과소평가와 함께 비판적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최근 사업 재편은 이같은 평가와 지적을 오해 또는 우려, 적어도 까마득하게 잊혀진, 말 그대로의 '전설'로 남게 한 것이다.
롯데그룹의 석유화학사업을 이끄는 롯데케미칼은 현재 석유화학 업황이 다운사이클로 접어들었지만, '글로벌 톱7 화학사'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의 실현을 위해 과감한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 롯데그룹 효자 사업은 유통이 아닌 석유화학
롯데그룹 연간 재무지표를 살펴보면 유통부문은 지난 2018년 그룹 매출의 34%를 기록,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EBIT(이자·세금 지불 전 이익) 비중은 16.9%에 그쳐 이익기여도 측면에서는 석유화학부문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같은기간 석유화학부문은 그룹 내 매출비중이 약 29% 수준이지만, EBIT 비중은 60%에 달했다. 유통 이미지가 강한 롯데그룹의 EBIT 비중 측면에서 석유화학부문이 유통부문의 무려 3배를 넘는다.
석유화학부문의 그룹 내 EBIT 비중은 지난 2014년까지도 연간 15% 수준이었다. 당시 유통부문(44%)은 물론, 면세점·호텔 등을 영위하는 레저부문(19%) 보다도 이익기여도가 낮았다. 그러나 2016년 롯데정밀화학(옛 삼성정밀화학)과 롯데첨단소재(옛 삼성SDI 케미칼사업본부)를 인수하면서 롯데케미칼은 크게 몸집을 불렸다. 석유화학부문이 이익창출력 등 측면에서 유통부문을 웃도는 그룹 내 핵심사업으로 떠오른 것도 이때부터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017년과 2018년 각각 3599억원에 달하는 배당을 롯데지주에 지급해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 롯데케미칼, 석유화학 업황부진에 체질개선 박차
다만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수요가 감소하면서 석유화학부문은 수익성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올해 3분기 누적 롯데케미칼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9564억원에 그쳐 전년동기 1조 8670억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이 같은 업황 다운사이클이 2~3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내에서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하는 롯데케미칼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룹 전체 수익성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롯데지주로 향하는 배당감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교현 화학BU장도 올초 "지난해 롯데케미칼 경상이익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 예년 수준의 배당은 힘들다"며 "배당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롯데케미칼은 사업 효율화에 박차를 가해 불황의 파고를 넘는다는 방침이다. 롯데케미칼은 올초 자회사 롯데첨단소재를 합병, 스페셜티(고부가제품) 포트폴리오 강화에 나섰다. 기존 롯데케미칼은 폴리머(PE·PP 등), 모노머(EOG·BD·SM 등), 기초유분(NC·BTX) 등 범용 화학제품을 주로 다뤘지만, 스페셜티 사업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이번 합병을 통해 두 회사가 각각 생산하던 폴리카보네이트 사업을 단일화하며 사업 효율화를 추구한다는 취지도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영국 소재 PET(음료수 병 등의 제조에 쓰이는 합성수지) 생산 판매 자회사인 LC UK를 매각한 바 있다. 부진한 사업은 과감하게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체질개선에 나선다는 이유였다. 올초 김 화학BU장은 "미국 루이지애나 공장 보수 이외에 올해 예정된 다른 투자는 없다"며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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