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21일 국회에서 데일리동방과 김종석의원실이 공동주최한 ‘지배구조와 경영권방어제도 토론회’에서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보면 차등의결권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차등의결권은 특정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줘 경영권에 힘을 싣는 방식이다.
국내 기업 경영권에 대한 우려는 안팎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 스튜어드십코드 강화 등에 나선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간섭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점유율은 2012년 5.4%에서 2017년 7%로, 2030년에는 9.8%로 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 투자 기업 수는 716개사였다. 올 2분기에는 국내 주식에 120조3000억원을 투자했다. 국민연금이 주식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273개, 10%가 넘는 곳은 80개사에 달한다.
국회에 계류중인 상법 개정안도 경영권방어에 불리할것으로 유 팀장은 내다봤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주주가 모회사 지분 1%만 가져도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회사나 손자회사 임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걸 수 있다. 유 팀장은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LG 시가총액이 12조5000억원인데 0.01%인 12억5000만원만 있으면 그룹 전 계열사에 소송을 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출 이사 수 만큼 1주당 의결권을 주고 이사 1명에게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임 역시 부작용이 우려된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은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와 분리 선출하고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 유 팀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외국 투기자본이 시총 상위 30대 기업 중 7곳(23.3%)을 장악하는 결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해외 투기성 헤지펀드 개입도 늘고 있다. 투기성 헤지펀드 공격 대상 기업은 2013년 139곳에서 지난해 226개로 약 62% 증가했다. 개입 건수는 같은 기간 166건에서 247건으로 약 50% 늘었다.
차등의결권 도입은 전환기마다 늘어났다. 1980년대 24곳이었다가 IT버블이 있었던 1990년대 52군데로 증가했다. 이후 2000년대 28곳으로 줄었지만 2010년대 96곳으로 껑충 뛰었다.
현재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 상당수는 4차산업 관련 업체다. 유 팀장이 미국 기관투자자협회(CII) 자료로 각 산업 부문을 살핀 결과 96개사 중 IT가 32곳(33%), 커뮤니케이션 서비스가 16곳(17%)에 달했다. 초기 투자비용이 큰 IT와 통신업 특성상 경영권방어와 투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차등의결권을 도입한다는 관측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VM웨어 등 주요 기업들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나스닥 상장기업 중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 110곳 영업이익은 7억800만달러다. 반면 나머지 2238개 기업의 영업이익은 1억5900만달러에 불과했다. 영업이익률을 보면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은 14.7%로 시장평균인 9.7%를 훨씬 웃돈다.
행동주의펀드 공격 성공률도 차이를 보인다. 200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미국 상장기업에 대한 행동주의펀드 공격은 4661번 있었다. 이 가운데 성공 횟수는 897회, 실패는 899회로 비등하다. 차등의결권 도입 상장사에 대한 공격 성공 확률은 9%로 실패(42%)보다 한참 낮았다.
유정주 팀장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되 실제 적용은 각 기업 주주에게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는 “일각에서 ‘결국 재벌만 좋은 제도 아니냐’고 반대하지만 기우에 불과하다”며 “기존 상장사에 도입하려면 정관을 바꿔야 해 주총 특별 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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