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 규모가 커질수록 재무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높은 수익률을 보완할 마땅한 투자처를 찾는 데도 어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조원 규모 성장·건전성 저하 우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발행어음 시장 규모는 10조원을 넘어섰다. 최초로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한국투자증권의 잔고는 올해 6월 말 기준 5조7174억원이다. 2호 사업자 NH투자증권은 3조5060억원, KB증권은 9571억원으로 집계돼 총 10조1806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IB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어음이다. 초대형IB는 자기자본의 2배까지 발행어음을 판매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기업대출·부동산금융 등에 투자할 수 있어 증권사에 매력적인 사업이다.
발행어음은 시중 금리 대비 높은 금리를 제공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KB증권의 ‘KB 에이블(able) 발행어음’은 출시 하루 만에 1회차 발행 목표치인 원화 5000억원을 완판하기도 했다. 이벤트 우대수익률 적용 시 세전 최대 연 5% 금리를 제공한 덕분이다.
현재 한국투자증권의 정액적립식 상품은 세전 연 3.00%의 수익률을 제공한다. NH투자증권의 QV 적립형 발행어음수익률은 2.50%다. 시중은행의 12개월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1.25~1.50%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발행어음은 증권사에 자금조달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레버리지 부담, 역마진 우려 등의 문제도 따른다. 증권사들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기업·부동산 투자에 사용하면서 레버리지배율 상승 등 건전성 저하를 겪고 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의 조정레버리지배율은 2017년 4.7배에서 지난해 말 6.9배로 빠르게 증가했고, 올 3월 말 기준 7.8배까지 늘어났다. KB증권과 NH증권의 6월 말 기준 조정레버리지 배율은 각각 6.8배, 7.4배로 타 증권사 대비 낮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초대형IB의 위험투자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자본적정성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면서 “특히 발행어음 업무를 영위하고 있는 초대형IB의 조정레버리지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좋은 투자처 찾기도 해결 과제
조달한 자금을 운용할 마땅한 투자처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발행어음은 고객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으로 고위험에 투자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수신금리가 2.5~5%까지 책정된 만큼 증권사들은 더욱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에 조달한 자금을 투자·운용해야 역마진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데다 채권 금리도 떨어졌다. 한국은행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AA-등급 회사채의 민평금리는 1일 기준 1.739%로 발행어음 수신금리를 한참 밑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은 적고 수익률은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다만 증권사들은 “수익성 우려가 존재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마땅한 투자처 발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스타트업·벤처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에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취지가 무색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발행어음은 혁신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당국이 허용한 사업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5월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은 조달자금 중 3조6569억원을 투자자금으로 사용했다. 이 가운데 중견기업 투자금이 2조8432억원,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에 7319억원, 중소기업에 817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이내의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금은 없었다. NH투자증권 역시 스타트업·벤처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에 투자한 사례는 없었다.
금융위원회는 "종합금융투자사들이 혁신성장 지원, 투자 수익률 제고 등을 위해 벤처·중소기업 등 혁신기업 투자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혁신기업에 대한 종투사들의 자금 공급이 보다 확대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필요성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만기가 짧은 발행어음은 벤처투자와 맞지 않는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발행어음은 1년 이내의 단기성 자금으로 확정 이율을 제공하는 상품이고, 리스크도 큰 스타트업이나 벤처 투자에 적합한 조달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업계는 발행어음 사업에 매력을 느끼고 사업을 인가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차기 발행어음 사업자로 나설 곳으로는 신한금융투자와 하나금융투자가 거론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8월 신한금융지주로부터 66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해 초대형 IB 인가에 도전한다. 하나금융투자도 지난해 3월과 11월 총 1조2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면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되면서 초대형 IB로의 활로가 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초대형 IB 지위를 가진 곳은 미래에셋대우와 삼성증권이지만, 삼성증권은 지난해 발생한 금융사고 여파로 발행어음 사업 인가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몰아주기 조사로 발행어음 인가 심사가 미뤄졌다. 다만 최근 금융위원회가 신규 사업인가 심사 중단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미래에셋대우의 발행어음 심사가 재개될 거란 기대감도 크다.
아울러 메리츠종금증권도 오는 2020년 종금라이선스가 만료되는 만큼 자본을 확충해 초대형 IB에 도전할 수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증자 등을 통한 자본확충이 아닌 순이익을 확대해 자연스럽게 초대형 IB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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