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동방] 라돈침대, 가습기 살균제, BMW 차량 화재, 식음료 이물질 등 소비자가 구입한 제품의 하자 문제로 피해를 입는 사례는 일일이 꼽히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이에 대해 건건이 소송을 한다는 것은 심리적, 금전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최근 분쟁조정, 손해배상금 등 제도적 정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손해배상금 대불제도’와 ‘분쟁조정 내용 공표제도’ 도입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대불제도' 도입 위한 정부·국회 논의 필요
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돼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대진침대의 소비자 집단분쟁조정 결과 라돈 매트리스 한 개당 배상액은 최대 18만원으로 계산됐다. 이는 부동산 자산 약 130억원을 리콜에 필요한 매트리스 총 6만9000개로 나눈 값이다.
대진침대는 유동자산을 기초로 마련한 180억원 중 매트리스 수거·파기·교환 비용으로 170억원을 지출했다. 현재 부동산 자산만 약 130억원 남아 있지만 집단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에게 압류된 상태로 배상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한국소비자원은 이 같은 문제의 개선 방안으로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도입과 ‘소비자 보호기금’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더불어 소비자 보호와 해당 업체의 영업 지속을 위해 ‘리콜 보험’, ‘공제 사업’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란 사업자가 분쟁조정 내용을 수락했음에도 자력으로 보상이 어려울 시 정부가 기금을 통해 피해 보상금을 대신 내주고 사업자의 상황이 나아지면 구상권을 청구하는 제도다.
이 같은 제도적 정비는 국회와 정부의 몫이다. 특히 대불제도는 재원 확보가 필수인 만큼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대불제도 도입과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 소비자분쟁조정제도, 대상자 거부 가능 한계
최근 ‘분쟁조정 내용 공표제도’의 도입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는 사업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반복해서 소비자원 분쟁조정위에서 결정된 분쟁 조정 내용을 수락하지 않을 때 그 내용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 기준 연평균 3만7000여건 피해 구제, 3000여건 분쟁 조정 사건이 접수됐다. 의료, 금융, 자동차 등 소비자원 이외에 별도의 분쟁 조정 기구에 접수된 사건과 실제 소비자 피해는 발생했지만 번거로움 등을 이유로 분쟁 조정 접수를 포기한 경우까지 합치면 소비자와 사업자 간 분쟁은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소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규제와 소송 측면에서 논의돼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점차 다루기 어려운 문제가 증가하면서 규제와 소송 모두 소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써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소비자 분야에서도 제3자의 조정과 화해에 의한 분쟁대체해결(ADR) 제도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소비자기본법에 이미 소비자원의 피해 구제와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분쟁 조정과 같은 ADR 제도가 도입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국내 주요 항공사의 반복된 분쟁 조정 내용 수락 거부나 대진침대의 집단 분쟁 조정 수락 거부 사례에서 보듯이 분쟁 조정은 소비자와 사업자 가운데 어느 한쪽이 조정 내용을 수락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양쪽 당사자가 조정 내용을 수락하더라도 사업자의 지불 능력 한계로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현행 소비자분쟁조정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적절한 갈등은 오히려 사업자에게 연구개발과 기술 혁신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해 BMW 차량 화재, 라돈침대 사건 등에서 보듯 소비자와 사업자 간 갈등이 신속하고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단순 불만을 넘어 시장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비용을 증가시키게 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정부 등 공공부문이 해야 할 일은 양측의 이익이 상호 극대화될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합의를 유도, 갈등 수준을 적절히 감소시키는 일일 것이다.
손해보상금 대불제도와 소비자기본법 개정 논의는 소비자와 사업자 간 분쟁 해결을 촉진하고 사회 갈등 비용의 최소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앞으로 이해관계자와의 숙의를 통해 제도 도입 필요성과 세부 요건, 절차 등에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와 사업자가 함께 상생할 수 있으면서도 사회 갈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보완책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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