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연속’ 연 박기원 작가 "나의 작업은 텅 빈 공간을 잇는 대화"

전시장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이 두려웠다. 바닥에는 뾰족뾰족한 모서리를 가진 작은 검은색 피라미드들이 수없이 깔려 있었다. 방금 전 신발을 벗은 것이 후회됐다. 뒤에 사람이 있어 잠시 주춤하다 발을 내디뎠다. 움푹 들어가는 스펀지는 안도감과 동시에 웃음을 줬다. 그로 인해 변한 공간은 다양한 느낌들을 전달했다.

박기원 작가는 오는 7월 20일까지 313아트프로젝트 성북 스페이스에서 개인전 ‘연속(連續: Continuity)’를 연다. 박기원 작가는 2005년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 전시 작가로 참여했으며 2010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전시 개막일인 지난 5일 만난 박기원 작가는 “전시장의 동선이 길어 장소마다 작업이 연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보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작업을 연속해서 보여드리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 전시명을 ‘연속’으로 지었다. 나의 작업은 텅 빈 공간과의 대화다”고 설명했다.

작가와 공간과의 다양한 대화는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했다. 전시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업은 갤러리 외부에 설치된 ‘사라진 입구’다. 2~4m 높이의 연한 녹색빛 FRP판 벽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잠시 후 마주할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혹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피라미드 바닥’은 박기원 작가가 예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작업이다. 박 작가는 “풀밭에서 쉬는 느낌을 실내에서 구현하고 싶었다. 전시 공간과 밝은 색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검은색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관객들이 이곳을 천천히 걷고 때로는 앉아서 공간 그리고 작업과 대화를 나누기를 희망했다.

고개를 위로 올리면 ‘X 모빌(X Mobile)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노란색과 검정색 사선 무늬로 된 테이프가 의미도 형체도 알 수 없이 얽혀져 있다. 박기원 작가는 “1층 벽과 바닥에 'X'라는 설치 작업을 한 후 그것을 그대로 떼어 어떠한 규칙도 없이 구기고 말아서 둥근 모빌 형태를 만들었다. 모빌로 인해 다양한 작업의 연속적인 상황이 좀 더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빌 뒤쪽을 보니 2층에 있는 방에서 강렬한 빨간 빛이 쏟아져 나왔다. 신비로운 방이 궁금해졌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설치 작업 ‘레드룸(Red Room)’은 LED 조명과 붉은색 비닐로 이뤄졌다. 붉은 빛이 가득한 방은 신기했고 동시에 따뜻했다. ‘저 벽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호기심도 생겼다.

박기원 작가는 “막힌 흰 방에서 빛을 이용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 수 없는 분위기, 공기의 흐름을 관객들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설치 작품과 함께 박기원 작가는 ‘넓이(Width)’라는 회화 시리즈도 전시했다. 회화 작업을 좋아한다며 미소 지은 박기원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계절을 주제로 한 시리즈를 100여장 정도 쭉 그렸다”며 “개인적으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며 “매일 그리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그린 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여백을 그렸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다양한 시각으로 관찰한 공간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박기원 작가는 솔직했고, 꾸밈이 없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작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작가는 “재밌는 시각적 작업을 하는 다른 작가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실제 내가 전시를 했을 때는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며 “단조로우면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는듯한 삶을 살았다.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품 옆에 서 있는 작가의 모습이 편안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