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꽃미모를 가진 청년은 거침이 없었다. 중국에서 처음 행위예술을 선보이면서 과감하게 여장 나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나체로 요리를 하는가 하면 만리장성도 걸었다. 그만큼 외모에 자신 있었고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청년은 어느덧 불혹을 넘어 지천명 가까이 됐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는 그대로지만 얼굴에 살이 붙고 배가 나오는 중년의 몸이 됐다. 더 이상 예전 같은 몸은 아니지만 이제 과거의 기억으로 자신의 나체를 그린다.
중국 행위예술의 선구자 마류밍(49)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학고재에서 이달 17일부터 9월 16일까지 개인전 '행위의 축적'을 연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4년 중국 상하이, 서울 학고재에서 연이어 선보인 개인전 이후 4년 만이며,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작업한 총 19점의 회화를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나이프를 이용해서 물감을 바르는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고, 4년 전에 선보였던 '누화법'을 이용한 신작도 전시됐다.
누화법은 성긴 캔버스의 후면에서 물감을 밀어내 표면에 스며들게끔 함으로써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마류밍은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그는 24세 때인 1993년에 베이징 동춘에서 '펀·마류밍' 퍼포먼스로 중국을 발칵 뒤집어 놨다.
중국에서 금기시되던 '신체 해방'을 소재로 여자처럼 얼굴에 화장하고 나체 상태로 요리를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퍼포먼스로 마류밍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1998년부터 퍼포먼스를 발전시켜 관객들과 같이 퍼포먼스를 하고 사진을 찍는 등 양성 중심의 통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 그가 퍼포먼스를 뒤로하고 본래 전공인 회화로 돌아온 것은 2005년부터다. 그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다.
17일 학고재에서 만난 마류밍은 "신체 행위예술 자체는 서구나 이미 있었던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일정 부분을 가져 왔다" 며 "중국이라는 체제 속에서 집단에 대한 항거로써 신체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마류밍은 이어 "인터넷을 통한 정보가 엄청나게 넘쳐나고 있지만 현재 사는 삶과는 너무나 많은 괴리가 있다" 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체로 억압받는 것을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것을 회화로 표현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나체 퍼포먼스를 나이프를 이용해 그리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나이프를 이용한 새로운 기법으로 그린 'No.11'과 'No.9' 작품이 나란히 붙어 있다.
작품은 나무를 형상화한 것으로 흐릿하게 백색의 나무 형체가 보이고 검은 바탕의 표면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다. 한쪽 구석에는 과거 나체 퍼포먼스를 벌였던 흔적으로 발이 그려져 있다.
나이프를 이용한 그림 기법은 캔버스에 흰색으로 형체를 만들면서 시작한다.
나이프를 붓처럼 이용해 유채 물감을 찍어 바른다. 어떤 곳은 두껍게 칠하고 어떤 곳은 얇게 칠하면서 입체감 있는 형태를 잡아 논다.
그런 다음에 1개월 후에 흰색 물감이 마르면 그 위에 나이프를 이용해서 검은색 유채를 바른다.
그렇게 바르고 나면 밑그림으로 그렸던 하얀색 부분의 두께와 검은색 부분의 두께에 따라서 균열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작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큰 균열이 일어나고 어떤 부분에서는 좀 더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면서 퍼지는지 숙지하게 된다.
마류밍 작가는 "마치 탁본을 뜨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며 "먹을 칠하고 종이로 찍어내는 탁본처럼 바탕은 검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얀색으로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층층이 쌓인 검은색 물감 사이로 하얀색 물감이 언뜻언뜻 보인다.
보통 그림을 그릴 때는 눈으로 판단해서 바로바로 수정 할 수 있지만, 마류밍의 새로운 기법은 하얀색으로 형체를 만들고 한 달 후에 바탕을 칠하기 때문에 그만큼 수정이 어렵다. 그것이 이 작품의 특색이자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이유다.
'No.1'(2016) 작품은 균열로 가득한 화면 안에 타오르는 불꽃의 형상이 보인다. 상단에는 작가의 다리가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마치 타는 불꽃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No.1'(2015~2017) 'No.2'(2015~2017)는 1989년 마류밍이 대학교 2학년 때 행했던 퍼포먼스를 회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No.1'(2015~2017)은 퍼포먼스 당시 길게 찢은 신문지를 온몸에 두르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No.2'(2015~2017)는 마류밍이 단상 위에서 비닐로 감싼 나체의 몸을 웅크린 채 괴로움을 토로하는 행위를 그렸다.
1989년은 중국에서 천안문사건이 일어나고, 독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는 등 세계의 변화가 급진전하는 시기이다.
▶나체 퍼포먼스를 지켜보던 관중을 그리다
'No.12'는 일반적 기법으로 그린 유화이다.
작품에서 나체 퍼포먼스를 하는 본인은 흐리게 표현하고 그 옆에 관람자는 구체적 형태가 나오게 작업했다.
"행위예술을 하게 되면 관중들이 나와서 같이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찍는 것이 누적되면 내 의식은 다 나가버리고 결국은 내 안에 있는 것이 비어있는, 공의 상태가 된 것을 표현했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 전시된 'No.1', 'No.2', 'No.3', 'No.4', 'No.5', 'No.6', 'No.8', 'No.12'는 4년 전 선보였던 누화법으로 그린 연작이다.
작품은 과거 작가가 행위예술을 할 때 같이 사진을 찍었던 사진 속의 인물들이다.
어린아이부터 청년, 중년 그리고 여자도 등장한다. 특징적인 것은 인물 전체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 신체를 절단해서 표현했다.
마류밍 작가는 "부분만 봐도 그 사람을 완전하게 표현을 할 수 있다" 며 "굳이 전체를 다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누화법은 틈이 큰 캔버스에 물감을 앞에서 칠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 넣는 방식이다. 성긴 캔버스를 사용해 이미지를 정교한 형태로 만들기는 힘들지만 경계선이 뭉개지면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또 성긴 캔버스를 끄집어 당겨서 마치 울퉁불퉁한 질감 효과를 낸다.
마류밍의 회화는 자신의 인생과 철학, 진실한 표현이 축적된 화면이다. 과거 행위예술로부터 불러낸 표상을 한 데 뒤섞어 풀어 놓고 신체의 자취를 재차 탐구한다. 마치 회화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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